‘머리를 한다’는 건 늘 고민을 수반한다. 나는 당최 한 번에 결정에 성공한 적이 없다. 짧게 자르고 싶다가도 긴 머리가 더 무난한 선택인 거 같기도 하고, 우아하게 굵은 웨이브를 넣고 싶다가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히피펌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백번쯤 고민한 끝에 매번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매직스트레이트 펌을 한 긴 머리, 그곳이 늘 같은 선택의 종착지이다.
매직스트레이트는 내가 고등학생 일 무렵 처음 나온 마법 같은 펌이다. 무려 이름마저 ‘매직’이 붙는 이 신기술은 그 시절 곱슬머리 친구들에게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심한 곱슬머리를 매직스트레이트 펌으로 생머리처럼 쫙 펴서 나타났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반에 있던 곱슬머리 친구 일곱이 매직을 하고 나타났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반에 긴 생머리를 한 친구들이 늘어나는 마법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매직 파마는 ‘인내’의 상징이었다. 당시 매직에 걸린 시간은 머리가 길 경우 7시간까지 걸리기도 했는데 예뻐지기 위해 참긴 참았지만 한자리에 앉아 견디기엔 길고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미용실에서는 펌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료수는 물론 빵까지 마련해두곤 했다.
어느샌가 매직은 우아한 웨이브의 세팅 펌에 밀려 유행에서 뒤처지게 됐다. 나 역시 그때 웨이브로 갈아타 한동안 매직을 하지 않았다. 다시 매직을 하게 된 건 긴 머리를 할 날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30대 중반 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 동경하던 긴 생머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났을까? 나는 곧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새치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꼬물꼬물 올라오는 하얀색은 일종의 경고음 같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울적함을 느끼게 된 것도 잠시 염색이라는 방어책이 작동했다. 자라나는 머리와 함께 다달이 염색해야 할 날이 찾아오는 것은 문제였지만 약간 귀찮은 걸 빼면 새치염색은 갈색 헤어라는 보너스까지 있었다.
하지만 새치염색은 매직스트레이트와 결합해 공통의 문제를 야기했다. 새치염색만 해도 머릿결이 나빠지는데 주기적으로 매직까지 해야 하니 머리카락이 견디질 못했다. 새치와 매직은 모두 ‘머릿결’과는 상극이었다. 결국 나는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깨달았다. 처음엔 둘 사이에는 우위가 없어 보였다. 둘 중 하나를 택한다는 것은 영 어려운 일이었고, 나는 둘 중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거울을 보다 선택의 순간이 머지않았음을 깨달았다. 새치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고 새치염색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심지어 염색 주기도 빨라지고 있다. 결국 포기해야 할 쪽은 점점 명확해져 간다. 마법 같았던 추억 속의 매직 스트레이트는 이제 진짜 추억이 되어 떠나갈 날이 머지않았다. 이별의 날은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점점 명확해져 가는 답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매직과 염색, 둘 다 포기하지 못했다. 다만 상한 머리카락을 잘라냄으로써 십여 년 만에 단발로 돌아갔다.
연장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긴 머리카락이었을까? 아니면 매직으로 만든 생머리였을까? 명확한 답은 알 수 없지만, 단발이 된 걸 보면 나는 아직 매직스트레이트의 마법과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은 듯하다.
마흔, 매직과 이별하기엔 아쉬운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