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

(젊은 날의 초상)

by 길을 걷다가



갈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그렇게 떠돌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빛바랜 검은색 외투 한 벌에 행색은 남루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은근히 부유했던 시절이었다. 떠돌이 생활이 막바지를 치달으며 종내는 강원도 정선군 남면 자미원 폐광촌 마을에 스며들게 되었다.


산촌은 백두대간 서부능선구간 중 지선으로 옆으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철쭉명산 두위봉(1465m) 무릎쯤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거친 바람을 피해 다닥다닥하게 지은 집들 사이로 시커먼 과거의 잔영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 흉물스러운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었고, 간간이 목청을 돋우며 메아리치는 흑염소 울음소리와 하루에 몇 번씩 지나치며 울리는 기차의 먼 기적소리만이 고적한 마을의 정적을 깨뜨릴 뿐 투박한 산촌인심은 그나마 적막한 산촌마을에 정적감만 더하는 그런 산골이었다.


96년 가을 내가 그곳에 간단한 봇짐만 싸 짊어지고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나 말고 이미 몇 명의 동지들이 미리와 둥지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둥지'란 고시원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예전에 광부들이 기거하던 기숙사를 개조하여 고시생들을 위한 공부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말함이다. 당연히 동지들의 방에는 퀴퀴한 곰팡내 풍기는 법서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고, 물론 내 방에도 같은 종류의 책들이 꽂혀있었음은 나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음이 틀림없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내가 아마 그런 부류 중에서는 거의 최고참의 반열에 서있었음도 사실이었다.


첫날 저녁을 먹고 방 정리를 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똑똑 노크를 하며 방문을 불쑥 열어젖혔다. 아마 고시원 막둥이 정도 되어 보이는 까마득한 후배 녀석이 "소주 한 잔 하러 오시래요" 퉁명스레 내뱉고는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화덕에 연탄 한 장을 찍어 넣고 찾아 나섰다.


방안에는 이미 몇 순배의 깡소주가 돌아가고 있던 터였지만 왠지 서늘한 냉기가 감지되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중키의 사내와 작달막한 사내가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맞이하며 중키의 사내가 다짜고짜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 난 고시 공부하는 너희 놈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를 진하게 섞어가며 독설을 토해놓기 시작했다. 난 신고식이거니 하며 별말 없이 엷은 미소로 응답하며 중키사내의 독설을 몇 잔 소주로 쓸어내리며 속으론 실소를 금할 길 없었다.


김형 그와의 첫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와 동갑나이인 김형은 전형적인 전라도 남도(무안군 해제면) 토종이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교직 생활하다가 의거 도미유학 이런저런 사정으로 귀국하여 방황하던 중 우연히 청계천 헌책방에서 법서와 조우하여 불혹의 나이를 목전에 두고 사법시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사내이다. 생김은 마치 닥터 지바고 에 나오는 '오마샤리프'와 비슷한 외모를 풍기고 있었고 몸가짐에서는 광산김 씨 후예다운 선비풍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였다.


김형은 매사에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다.

한 번 책상에 앉으면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거의 일어날 줄 몰랐다.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며칠을 꼬박 세우며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곤 했다. 그러다 한 번 발동 걸려 술을 먹을라 치면 안주라고는 달랑 생라면 하나 부수어 놓고 말 그대로 2박 3일간 대병 강소주 몇 병씩을 해치우곤 했다. 그 시절 술이라면 두주불사를 마다했던 나와는 좋은 호적수 사이가 되었다. 먹다가 술이 떨어지면 깜깜한 산길을 헤치고 문을 두들겨 소주를 구해와 밤새도록 마셔댔고 다음날 아침나절 잠깐 눈 붙이고 나서 산에 올라 계곡물에 발 담그고 마시기 시작하여 하루해를 넘기고 다음날에도 산 정상에 올라 비를 흠뻑 맞아가며 마시다 내려오면 2박 3일의 주도여행이 끝이 나곤 했다.

김형의 주법은 참으로 독특했다. 술을 마치 양식을 씹어 먹듯이 그의 표현대로 조근조근 마신다. 많은 양의 술을 단기간에 빨리 마셔버리면 그 술을 이겨낼 장사는 없다. 조근조근 이야기해 가며 마시다 보면 2박 3일의 술여행이 그리 어려운 과정이 아님을 나는 그 시절 김형에게서 전수받았다.


우린 서로 공부에 대해 각자의 견해를 내세우며 고집을 부리기도 했고, 그동안 살면서 응어리진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도 했었다. 만취하여 자학하는 김형을 만류하다가 결국 내가 물기 젖은 생나무 몽둥이로 김형의 엉덩이를 검붉게 물들이며 허연 달빛아래서 서로 껴안고 꺼이꺼이 울기도 했었고, 백설이 온통 천지를 뒤덮은 산중 설화 속에서 허연 입김 불어가며 마시기도 했었다. 밤하늘에 별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었고 보름달이 그렇게 가까이 떠 있는 줄도 몰랐었다.



있는 사람이나


돌아온 사람이나


고독하고 허전한 건 매양 마찬가지다.


던져 버리려고


떨쳐 버리려고


짊어졌던 외로움의 보따리엔


허황한 도시의 그림자가 덩그러니 애수를 더하고


있는 자는


돌아온 자를 보듬느라


고독이 더욱 진하다.



96.11.30


(태백선 열차 타고 밤늦은 귀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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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김형의 속내는 매우 감성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문학청년 같은 순수성이 돋보였다. 나 역시 초심을 잃은 직업고시생으로서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젖어 타성적인 고시병에 깊이 빠져있었다. 어쩌면 김형이나 나나 고시공부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고, 더구나 고시라는 냉혈동물을 움켜쥐기엔 어울리지 않는 그런 감성적인 인간형이었다. 그래도 인생을 걸고 도모하는 일이기에 서로를 위안 삼아 가며 96년 하얀 겨울을 빼곡한 일정에 맞추며 열의를 불태웠다. 그 해는 유난히 눈이 많았고 두위봉엔 동화 속 궁전 같은 설화가 피어나곤 했다.



이 까만 고을에


눈이 소복이 내리던 날


아이들은


눈 맞으러


남면(南面:別於谷)에 나갔는데


나는


방안에


촛불만 하얗게


밝히고 있네.



96.12.27



꽁꽁 얼어붙은 산촌에도 어김없이 새해가 밝아왔고 이젠 본격적인 시험시즌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강원도 첩첩산중에서 시험을 보러 간다는 일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 전날 시험지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시험을 볼 수도 있었지만, 경험 측 상 시험전날 장거리 이동과 숙소의 변화에 따른 심리적 불안정함이 일 년 농사를 가늠하는 한 판 승부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미원을 떠나야 했다. 김형과의 이별이 예고되고 있었다.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 잔뜩 들여가며 서로의 외로움과 고난함을 보듬고 살아왔는데 이 고적한 산중에 외로이 김형을 홀로 놓고 떠나려니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사로운 감정에 빠져 도모하는 일을 그르칠 수도 없었다. 너무 늦기 전에 고향 가까운 곳으로 고시원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떠나기 전 날 김형과 증산 읍에 나가 책과 옷가지 등을 소화물로 미리 부치고 떠나는 몸을 가벼이 했다. 그날 저녁을 먹고 아쉬운 석별의 소주잔을 기울였다. 김형과 나는 말없이 그저 소주잔만 연신 들이킬 뿐 어색한 그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아침에 일어나니 자미원에는 온통 하얀 백색의 설원이 펼쳐져있었다. 아직도 그 위로 소복이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김형은 아침식사를 하러 오지 않았다. 아침밥 먹는 내내 고시원 식구들도 별말 없고 그저 어눌한 침묵만이 흩날리는 눈발과 함께 쌓여갔다.

이젠 떠나야 할 시간이 다 되었다. 김형 방을 찾아갔다. 어제 먹은 소주 탓인지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방안엔 소주냄새가 아직 그득하고 아마 어젯밤 혼자서 술을 더 마신 듯했다. 김형을 흔들어 깨워 보았다.

"김형! 나 갈라네……. 김형!!!


몇 번을 흔들어 깨웠지만 김형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손을 흔들며 알았다고 수신호만 보내왔다. 공연히 사족으로 몇 마디를 남기고 방문을 닫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김형방에서 절규에 가까운 외마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를 두고 어디를 간다는 말이여…….


가면 안 돼 안 돼 안~돼!!!


정~형!!!


김형의 취기 어린 절규가 은빛 정적의 자미원 아침을 선홍색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산비둘기가 푸드덕하고 날갯짓하며 잿빛하늘 위로 긴 울음소리와 함께 날아올랐다. 난 먼 하늘을 바라다보며 천천히 순백의 설원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기 시작했다. 눈물인지 눈물인지 뜨거운 무언가 콧등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열차는 이미 영월 청령포 철교 위를 지나고 있었다.


김형!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네.

내 떠난 흔적일랑

저 눈 속에 묻어주시게

돌아오는 봄날

우리들의 겨울을 이야기하기로 하세.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렇게 고난하고 외롭기 때문인 것 같네. 인간사

회자정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네.

건강하고 학업에도 많은 성취가 있기를 진심을 기원하겠네. 송형에게도 안부 전해주게.


총총히 전하네.



97.1.4


그 해 겨울 이렇게 김형과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나의 외롭고 고난했던 질곡의 고시여정도 그렇게 해서 서서히 대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김형과 헤어진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 이젠 내 나이 지천명을 넘기고 말았다. 난 김형과의 헤어진 후에 여러 가지 다난한 일들을 겪어내야 했고 한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내며 냉혹한 현실적응에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다행히 늦게나마 착한 처를 만나 현실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결혼 후 처와 함께 자미원을 찾아보았다. 자미원은 변함없이 십 년 전 옛 풍광 그대로 그 자리에서 날 반겨 주었다. 김형소식을 물어보았다. 내가 떠난 후 잠시 머무르다가 떠난 이후 소식이 없다고 했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돌아서야 했다. 돌아서며 올려다본 두위봉 위로 흰 구름만 무심히 걸려있고 고추잠자리 떼가 철이는 코스모스 위를 맴돌며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또 가을이 찾아왔다. 계절 탓인가 아님 나이 탓인가? 누군가 불현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럴 때 마음 저 깊은 심연 속에서 나지막이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 있다.


김형!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살고 있으시오?

보고 싶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