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by 길을 걷다가

오늘따라 유난히 술 한잔이 간절하다. 조심스레 옆자리 동승한 딸의 의중을 떠본다. 단호하게 참으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 위로 오후 햇살이 산산이 부서져 내린다.

사실 최근 반년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늘어나는 빈병 개수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뭔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싶은 마음의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주를 시도한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참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나니 이젠 참을만하다. 그런데 오늘은 술 한잔이 간절하다.


3일 전 명절을 지내려 내려온 누님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어머님 상태가 예전과 달리 이상하다고 하신다. 부랴부랴 달려가 상황을 파악하고 119 콜을 불러 응급실로 어머님을 모시고 갔다. 그동안 어머님은 초기 치매 증상이 있었지만 97세 노구의 몸을 이끌고 방문 요양보호사의 도움과 형제들의 돌봄에 의지해 근근이 독거의 삶을 영위하고 계셨다. 만성적 어지럼증을 호소하셨고 팔다리에 힘이 없으셔서 자주 낙상하시어 수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계셨다. 그래도 보호시설에 가시지 않고 집에서 말년의 삶이 마무리되시길 간절히 속으로 염원을 했었다.


응급실 담당 과장이 사진판독을 하더니 '심인성 폐렴증상'이라고 말해준다.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꽉 막힌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주 출근하는 딸내미 상경을 위해 길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 선친묘소를 찾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고생 많이 하지 마시게 아버지가 편안히 모셔 가세요"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나의 기도에 아버지가 응답해 주셨는가 다음날 아침 어머님이 소천하셨다. 병원 입원 후 이틀 동안 힘들어하시다가 아침에 잠자듯 평온하게 조용히 임종을 맞이하셨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평소 어머님이 좋아하셨던 꽃으로 재단을 마련했다. 무난히 장례절차를 치르고 선산 아버지 곁에 합봉해 드렸다. 다행히 오늘은 봄날 같은 겨울날이다. 이마저도 어머님이 도와주시는 것 같다. 또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어머니는 충청북도 보은에서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 나섰다. 모두가 힘들어하던 일정시대 때 이웃들에게 묵은쌀을 나누어 줄 만큼 넉넉한 가세였다고 한다. 위로는 외삼촌 두 분이 계셨고 특히 외할아버지의 총애를 많이 받으며 성장하셨다고 한다. 공무원인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셨서 2남 2녀를 생산하셨다. 젊어서 어머님은 팔방미인 이셨다. 시골마을에 시집온 새댁의 음식솜씨와 바느질 솜씨는 온 동네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우리 집에 바느질 거리를 맡기려고 줄을 서있었고, 그 시절 손수 바느질로 지은 옷을 입고 우리 형제들은 자랐다. 남들과 다른 옷을 입고 학교 가는 게 왜 그리 창피했던지... 어머님은 항상 몸을 바르게 하시고 정갈히 몸단장을 하시는데도 빈틈이 없었다. 흐트러진 모습을 뵌 적이 없다.


부잣집 외동딸답게 어머니는 본인 중심적 삶을 살아오셨다. 자식들보다 아버지를 더 애정하셨고 본인이 하시고 싶은 일에는 집안팎을 가리지 않고 주저함이 없었다. 성장하면서 왜 그렇게 서운하고 섭섭하던지 가정적이고 자애로운 어머니를 둔 친구들이 너무 부럽기도 했었다.


난 철없던 반항기의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한때는 막막하고 힘든 질곡의 여정을 겪어내며 부모님의 속을 많이 썩인 불효자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묵묵히 믿음으로 날 지켜봐 주셨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님은 형제 중 유독 막내인 나에게 많이 의지하고 계셨다. 정기적으로 병원일과 은행일을 봐드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속죄하려는 마음보다는 맡겨진 의무감이 더 크지 않았나 하고 반성하게 된다.

그래도 보호시설에 모시지 않고 집에서 보내드린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내리사랑인가,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따라가 못한다. 아쉽지만 이렇게 다들 세월을 보낸다. 이젠 누가 밥 꼭꼭 챙겨 먹으라고 말해주나?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평안하게 영면하세요. 조만간 봄이 오면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들꽃들이 만발할 거예요.

202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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