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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Apr 27. 2021

"국수? 국수 그거 구포국수가?"

아버지의 고향과 내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그 맛

내 고향은 포항이다.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봤을 때 포항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보통 2가지 질문을 한다.

하나는 거기에 무슨 시장 있지 않냐고 물어보고,

다른 하나는 오른손을 들고 손바닥을 위로 보인 후 손가락을 위로 뻗어 이거 있지 않냐고 물어본다.


첫 번째의 시장은 엄청나게 큰 시장인 포항 명물 죽도시장이고,

두 번째의 손은 섬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호미곶의 해돋이 손이다.


우리 아버지 고향은 부산이다.

아버지의 청춘은 부산에서 시작했고 결혼 전까지 부산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옛날 아버지는 국수를 먹을 때 구포국수를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일지는몰라도 아버지는 국수를 찾을 때 무조건 구포국수만 찾았고,

어머니가 국수를 만들어 준다고 하면 항상 '국수 그거 구포국수가?' 하고 꼭 물어보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국수는 구포국수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항상 구포국수만 먹어왔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국수를 사 오시면 흰색 종이에 빨간 글씨로 '구 포 국 수'라고 쓰인 국수를 사오셨다.

종종 다른 국수를 사 오기도 했는데 그 국수는 아버지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라 그냥 그 맛이 그 맛 같아서 국수 종류를 가리지도 않고 잘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국수가 맛있어서 좋았다.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 디포리 등등을 넣은 멸치육수에 바로 삶아서 찬물에 씻은 국수를 넣고

(국수는 물론 구포국수다.)

어머니가 만든 특별한 간장 양념을 조금 넣어 간을 맞추고, 

호박, 김치, 계란 등의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고명을 국수 위에 얹은 후, 

멸치육수를 한가득 부어 따뜻한 국수면을 

호로록 면치기와 함께 입 안에 넣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멸치육수에 넣어 먹어도 국수는 맛있지만 

작은누나는 특히 그냥 아무것도 안 한 생국수를 좋아했다.

꼭 국수 한 그릇 옆에 찬물로 씻기만 한 생국수를 한 줌 넣은 그릇을 두고 두 가지를 함께 먹었다.

그것이 구포국수여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국수를 좋아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는 생국수가 정말 맛있다고 했다.




포항을 떠나 대전에서 생활하면서 국수를 먹을 때면 이 국수가 어떤 국수인지 구포국수가 맞을지 생각한다.

오랜만에 국수를 만들어 먹으려고 마트에 가면 온갖 국수 종류들이 많지만 구포국수가 보이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국수는 구포국수라는 말을 듣고 구포국수만 먹고 자라왔는데 

마트에 구포국수가 보이지 않아 이 국수가 경상도에만 있는 국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특제 멸치육수와 양념간장이 없어서 그런지 옛날의 따뜻하고 얼큰한 국수 맛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맛있는 녀석들'에서 국수 편이 방영되는 것을 보았다.

경남 지방에 내려가 국수를 먹는데 특집 이름이 구포국수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TV에 집중했다.

김준현이 정말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면준현이라고 불릴 만큼 면류를 좋아한다고 알려진 김준현이 들숨에 국수 면발을 들이키며 일명 면치기를 기갈나게 했고 면치기 소리와 국물을 마시는 소리에 옛날에 즐겨 먹었던 구포국수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구포국수가 왜 구포국수인지 설명을 해줬는데 

6.25 피난 이후 부산의 구포 지역에서 국수를 만들기 시작했고

먹을게 부족하던 시절 쌀 대신 국수의 수요가 늘어감에 따라 

1980년대까지 구포에서 생산되는 일명 구포국수가 부산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기술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국수를 만드는 곳이 늘어났고 유통이 활발해지며 

구포국수의 힘은 점차 사라져 갔고 여러 이권다툼이 있은 후 

지금은 부산에서 생산되는 국수 이름을 통상 구포국수라고 부른다고 했다.

또한 구포국수는 다른 국수와는 달리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국수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부산 바다의 해풍으로 인해 국수에 자연스럽게 염분이 흡수가 되어 

국수 자체에 적절한 간이 배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포국수는 다른 국수와는 다르게 국수 자체만으로도 간이 되어있다고 한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니 왜 아버지가 구포국수만을 찾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구포국수는 국수의 맛도 맛이지만 아버지의 고향인 부산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었을 것 같다.

58년생인 아버지의 먹을 것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 배를 채워주었던 부산의 구포국수를 세월이 지나 먹음으로써 추억이 살아남과 함께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향수를 불러오는 음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젠 아버지를 이어 구포국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 되었다.

국수를 먹을 때마다 구포국수를 찾던 아버지와 국수를 만드는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작은누나의 생국수를 먹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빠 국수 드세요.'

'국수? 국수 그거 구포국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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