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날 문득 떠오른 궁금증
이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죽음을 향한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
21세기가 되기 전 1990년대를 살고 있던 초등학생인 나는 화창한 해가 뜬 어느 날 집 앞 골목을 걷다가 '사람은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당시 주말마다 가던 불교학교(?)에서는 불교 윤회사상에 따라 우리가 죽게 되면 다른 무언가로 환생을 한다고 했는데 그럼 다른 무언가로 환생하기 전 우리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다.
사람은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두 귀로 세상을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입으로 맛을 느끼는데 죽음이라는 미지의 공포가 우리에게 닥쳐오면 신체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과연 오감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감각을 느끼게 될지 궁금했다.
100번 고민하고 1000번 해답을 찾아 헤매더라도 0%의 가능성만 존재하는 뫼비우스의 띠 위를 달리지만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고민은 나를 포함한 온 인류의 궁금증일 것이다.
골목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한 이후 20여 년간 문득문득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우선 시각이라는 세포가 죽어 없으니 앞이 보이지 않을 테고 어둠만이 가득한 세상만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눈이 없는데 눈이라고 표현하자니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오감이 사라진 세게에서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여기는 어디인지 아무런 감각이 없을 것이다.
심해 속에서 자유의지 없이 유영하는 신세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불교의 윤회사상처럼 죽음 이후에 다른 무언가로 환생을 하게 된다면 그 과정은 어떻게 될까?
어딘지 모르는 세계를 유영하다 인형 뽑기의 인형처럼 무작위로 신의 손에 걸려 다른 생명체로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고, 핀볼처럼 랜덤으로 이리저리 튕기다가 생명체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생이라는 지금의 기억들과 의지들은 모두 사라지겠지.
내가 살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내 모든 기억과 경험들이 마치 수도꼭지에서 떨어진 물방울처럼 다시는 찾아내지 못할 그런 존재처럼 흘러갈지도 모른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더라도 전생의 기억이 없기에 죽음에 대한 똑같은 고민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이 우리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해답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예 해답이 없을 수도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 세대마다 RESET 되는 수십억의 되풀이되는 문제풀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죽음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문제를 눈 앞에 두고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음과 인사할지도 모르는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분명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한낱 모래알보다 작은 존재지만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유일무이한 존재이니 만큼 우리에게는 우리가 모른 삶의 사명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 나가는 게 우리 인생의 과제이자 숙원일 것이다.
비록 당장 내일 죽음이라는 것에 키스할 수도 있고 아니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죽음과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저 눈 앞에 펼쳐진 찬란한 현재를 살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매분 매초에 집중해야 한다.
죽음 이후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듯이 우리 앞길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르기에 조금이라도 더 밝은 현재 그리고 내일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게 우리 사람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죽음과 마주했을 때 내 인생을 돌아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죽음 이후의 세상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