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를 말하다
사물의 질감과 빛과 그림자로 변주되는 이런 이미지가 좋다. '리움미술관'에서 '렘-콜하스'의 공간을 보았을 때 감흥이 마치 저랬다 할까? 굳이 사족을 달자면, 차거운 금속성의 질감과 조밀하고 성실한 섬유에서 오는 따듯함의 어우러짐. 나는 이 양 극을 대비라기 보다는 화합으로 느끼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이 만드는 사선의 솔직함, 그건 정물로서의 공간을 더 깊고 비밀스럽게 만든다. 그럼으로서 공간은 더욱 역동성을 지니게 됨을 확인한다. 하물며 여기에 시간이 개입된다면..... 질감이 만들어 놓은 공간의 신뢰에 겹쳐지는, 시간으로서의 빛의 자유분망함이 시시각각 다른 음률로 변주됨을 알아챈다는 것는 얼마나 값진 순간인가. 하여, 내내 모호하던 건축의 위대함이 마치 이 하나의 장면으로 다 풀어지기라도 할 듯 얼른 흥분을 기록해 두는 것이다.
이미지의 포착은 종종 나의 도구를 거쳐 현물로 실현되고자 발버둥 친다. 하지만, 그럴 기회가 좀체 오지 않을 뿐더러, 설령 왔더라도 다른 요인으로 말미암아 묻혀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시도는 종종 표피에서 머물렀다. 오늘같이 시간을 죽여야할 때이면, 그러한 열망들을 열어보게 된다. 은연중 눈에 익었던 이미지와 제출된 그림의 유사성을 발견하려 하는 것이다. 섬유-돌, 금속성-유리, 기계-루버.... 와 같은 단순하고 유치한 줄긋기를 해보는 것이다. 물론 시간과 빛의 변주에 대하여는 꿈도 꾸지 못했다. 표피에 머무른 상태로 사고는 정지되었고 저 그림들일랑 서둘러 <Un-Constructed>라는 비밀 폴더에 집어넣어 버렸던 것이다. 현실의 파도를 타야만 이루어지는 변주되지 못한 창작의 비애, 뭇 건축가들의 숨은 아픔이다.
-深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