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를 말하다
부산 시청 맞은편에 높은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의 기분은 잊지 못하겠다. 무심코 바라보던 황령산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마치 영화 ‘주만지’에서 좌충우돌 달려오던 코뿔소, 코끼리 등을 연상케 했음이다. 공룡 같은 건물이 시청 앞마당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현상설계를 통하여 좋은 안을 뽑아, 남 못지않게 현대식 시청을 만들겠다고 하던 시장님의 목소리가 엊그제 같았는데.
시청과 같은 공적 건물이 거대하고 화려하여, 시민을 향하여 권위적이거나 위압적인 데에 대해서는 지금도 반대한다. 그렇다고 하여, 여느 상업 건물처럼 아무렇게나 취급된다면. 그것은 시민의 자존심 문제이다. 공적 건물이므로 개별의 건물로 존재하지 않고, 그 주위는 물론 도시 전체의 맥락을 이루어야 한다. 건축가의 계획안에는 분명 황령산에서 동래와 금정산으로 이어지는 도시 축 하나쯤은 그어져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굳이 유럽의 잘 된 도시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서울의 경우만 보더라도 공적인 건물의 자세를 생각할 수 있다. 있던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둘째로 하고. 금싸라기 같은 자리의 큰 부분을 욕심 없이 광장으로 비워 두었다는 사실. 그래서 시민들은 거기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며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고, 대표팀의 경기 때에는 ‘대한민국~’ 하고 함성도 함께 지르며, 때론 삼삼오오 모여서 정치적 시위를 하기도 한다.
부산 시청 주변의 경우 아쉬움이 많다. 과연 도시 계획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시민들의 십시일반 돈이라도 모아 그 땅을 사 버렸더라면 하는 자조조차 생기는 것이다. 옛터를 버리고 넓은 곳을 찾아 나선 시청이 높은 아파트 사이에 다시 갇히고, 맥락을 잃어버린 것이다.
내 전시회를 둘러보러 온 어느 분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이런 그림을 그리세요?” “아~ 예. 이런 풍경들이 사라지는 것들이 아쉬워서요.” 매축지마을, 우암동 소막마을, 그리고 재개발로 비워진 해운대 중동마을. 내가 그린 오래되고 낡고 초라한 모습의 동네 그림을 두고 나눈 대화이다.
대화는 도시의 전역에 빽빽이 들어서는 아파트와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도시 풍경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십수 년 전, 재개발의 열풍에 부산의 전역이 전국 건설회사들의 각축장이 된 적이 있다. 이른바 브랜드 상품들이 휩쓸던. 그리고 그 열풍이 사그라질 즈음에는 부산의 건설사들이 후발로 우후죽순 아파트들을 지어내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도시적 맥락 따위에는 관심이라도 있었을까?
그러기에 건설사는 시청의 앞마당과 같은 그 부지에 얼마나 많은 세대수의 집을 지어낼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을 것 아닌가. 시장실에서의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던 시장님의 심경에 대하여 짐작할 수 없으니 그 또한 안타깝다.
대화는 더 이어졌다. “그들은 이제 부산 땅에서 돈도 많이 벌었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시민들을 위하여 최소한의 염치는 가지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요?” “땅을 사서 집을 지어 파는 경제 행위를 어찌 탓하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제어하고 염치를 가질 때 그 경제는 건전하고 이룬 자본은 빛이 납니다.”
나는 건설사의 눈에 소막마을, 매축지마을, 중동마을이 단순한 땅 몇 평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그것의 소멸을 안타까워하고 그림으로 그려 놓을 생각을 하듯. 건설사 사장님에게도 힘들고 아팠던 시절의 에피소드 하나쯤은 기억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땅의 어느 한 부분은 옛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장소로 남겨 두면 어떨까?
도시계획을 수행하는 관료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옛 마을의 십 분의 일, 있던 그대로 남겨 놓기.’ 그리고 건설사 사장님에게는 이런 말씀 드리고 싶다. “그동안 시민의 기억을 열심히 허물어 간 데에 대한 속죄라 생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