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말하다
‘꾸미는 것은 당연히 없애야 하고
진흙인들 어찌 혼탁하게 하리오
치열하게 설법을 새롭게 해서
육지와 언덕에 사네'
목련을 노래한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의 시다. 물속의 연(蓮)꽃이 뭍으로 올라온 사연을 시로 읊었다. 그리하여 물을 떠난 꽃은 해마다 봄이면 물이 그리워 하얀 꽃으로 피어 오르나 보다. 목련(木蓮)이라 사람들은 불렀다. 그걸 시인은 물의 혼탁을 염려한 꽃의 새로운 설법이라 노래했다. 아무튼 꽃이 목련이라 불리운 사연이다.
꽃을 보고 생각한다. 연꽃. 물속의 꽃은 몇 번에 걸쳐 피었다가 오므리고 또 피어나기를 반복한다. 결핍이 없는 꽃이 아쉬운 게 무얼까? 다만 빛과 어둠을 가려 제 몸 단도리나 잘 하면 될 뿐.
그러나 용기를 내어 뭍으로 올라온 것들에게는 결핍이 일상이다. 거기에 메마른 땅이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하물며 가혹하게 동토의 시절을 견디기도 해야 했으니 참으로 가련한 운명이다. 그러나 꽃은 다시 물로 가지 않는다. 묵묵히 지내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한번 일시에 피고 일시에 뚝 떨어진다. 절규일까 함성일까?
참으로 뻔뻔한 일이 아닌가. 꽃을 훔치며 그 가련한 것들의 운명을 사유해야 하다니. 이런 것이다. 속내를 감춘 꽃은 마르지 않으려 제법 두툼하게 무장을 하고, 어렴풋한 시절의 그리움을 하얗게 내지른다. 개별로 혹은 일제히... 그리하여 그 함성에 나는 해마다 눈물이 났다. 내가 울어야 하는 것은 내일이면 뚝뚝 떨어져 버릴, 그리하여 흑빛으로 퇴색될 안타까운 것들의 운명이라기보다는. 결핍을 이기려 일제히 외치는 그 하얀 치열이 감사해서가 아닌가.
아~ 어찌할까. 순백으로 맞아야 하는 이 봄을. 꽃을 사이에 두고 가슴을 펴 하늘을 향하리라던 야무진 꿈을 두고, 나는 해마다 꽃을 훔치고 방에다 가두고, 그 꽃의 가련함에 대하여 쓴다. 그것들은 모두 아프다. 여지없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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