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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Jun 23. 2023

꽃밭에서

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꽃의 끌림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꽃밭에는 늘 사람들이 붐빈다. 가까이 얼굴을 대고 꽃냄새에 취해보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꽃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컷 정도는 카메라에 남긴다. 여인조차 꽃 앞에서는 기꺼이 자신의 미모를 내려놓으니, 꽃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사람들의 그것을 압도한다.


꽃에 대한 기억은 어릴 적부터다. 하지만 꽃을 가까이하지 못한 것은 집에서 마당이 없어지고 난 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동요 ‘고향의 봄’ 노래만 가슴 한구석에 남긴 채 꽃에 대한 탐심은 그날 이후로 아득해졌다. 꽃을 잃었다기보다는 꽃과 함께 나누는 소소한 일들이 사라진 것이다.


어디 나뿐일까? 꽃밭을 잃은 사람들은 텔레비전 뉴스로 꽃 소식을 접한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찾아다니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매화, 산수유, 벚꽃의 시절이 지나면 진달래 철쭉의 시간이 온다. 그리고 장미, 수국의 시간을 거쳐, 코스모스와 국화의 계절을 또 맞이한다. 마당을 잃은 사람들은 앞다투어 차를 몰고 꽃밭으로 향한다. 마치 나비와 벌의 본능적 움직임과도 같이.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 수국꽃을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늘 지나다니면서도 눈치채지 못하였는데 어느새 꽃 잔지가 열렸다. 활짝 핀 꽃의 분망함에 마치 선망하던 여인을 만난 듯 한동안 어찌할 줄을 몰랐다.


감정을 놓칠세라 얼른 스케치북을 열고 그림을 그린다. 크게 한 송이, 또 무리를 지은 꽃밭을. 그리고, 그 사이를 여유롭게 걸어가는 하얀색 강아지와 젊은 여인을. 꽃밭에 파묻힌 사람들은 그런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꽃에 몰두한다. 꽃밭을 몽땅 자신만의 방으로 옮겨 놓으려는 듯, 사방에서 찰깍찰깍 소리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수국은 대표적인 여름꽃이다. 청보라 빛깔의 수국 옆에 앉으면 금방이라도 땀이 식혀질 듯 신산하다. 낱낱의 꽃이 모여 둥근 형태를 이루는 특이한 꽃이다. 오묘한 색깔의 꽃은 개별적으로도 예쁘지만, 무리 지은 모습이 더 볼만하다. 토양 성분에 따라 흰색이었던 꽃이 점점 청색, 붉은색,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신비로움 마저 있으니,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충분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수국 축제 소문이 들리고, 사람들의 앨범에는 수국꽃이 점령하게 된다. 부산에는 영도 태종사 수국 군락이 장관이라 소문이 나 있다. 바야흐로 붉은 장미가 시들해지고, 그늘이 그리워지니 수국의 시간이다.


꽃밭에서 나는 잠시 아버지 생각을 하였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아동문학가 어효선이 글을 쓴 동요 ‘꽃밭에서’를 들어보면, 정성스럽게 꽃밭을 가꾸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식구들에게 계절마다 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던 애틋한 마음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꽃밭을 가꾸는 일은 늘 아버지의 몫이었고, 우리는 그 꽃을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 꽃을 가꾸는 아버지. 마당과 함께 우리가 잃은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우리 동네 수국꽃밭. 전임 구청장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것이 올해 들어 만발하니 이런 장관을 이룬다. 멀리 가지 않고, 내 집 앞에서 꽃의 축제를 보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래된 마을에 벽화를 그리자던 어느 시장님보다, 이렇게 꽃밭을 가꾸어 놓은 구청장이 더 멋있는 아침이다. “그래! 맞아. 꽃을 심으면 될 일이었어.”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 집 마당에서 꽃밭을 다듬으시던 아버지의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행정이란 결국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남이 기웃거리든 말든 동네에 사는 우리가 즐거우면 된다. 도시를 가꾸는 일은 작은 데에 있나 보다. 좁은 길모퉁이마다 꽃이 피는 길. 도로가 시원하게 뚫린다던 거창한 도시계획이 그만 무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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