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말하다
고백한다. 나는 창작, 예술, 기술 이전에 살기 위하여 더욱 절실하게 돈을 구해야 했고, 이른바 돈벌이의 대상을 찾기 위하여 평생을 마치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숲을 찾아 헤매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그때마다 서서히 노동의 소중함을 배워 나갔다는 것이다. 노동의 발생이란 관계들의 조합. 그리하여 하나의 유기체로 서는 일. 뼈대가 내 노동의 순수였다면, 피는 상대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러므로 나는 외롭지 않은 표범.
한때, 내가 하는 일이 2분법적으로 노동일 수 없는 이른바 관리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적이 있기는 하였다. 하지만 노동의 정의에 대한 나의 야무진 착각이었음을 안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노동과 관리의 경계가 확연치 않고 먹고 사는 일이라는 것이 원초적으로 다른 세계의 것이 아니었음을. 애초부터 그 사실을 알고 갈파한 시인이나 인본주의자들의 주장의 거룩함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노동, 용역과 같은 단어는 어쩌면 내게 예술보다 위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여름날 아침, 문득 노동을 그려보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