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말하다
1886년에 태어난 일본의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1933년 건축적 산문인 <음예예찬>을 발표했다. 80년이 훌쩍 지났지만, 어둠과 그늘에 관한 특유의 공간적 고찰은 요즘의 건축가들에도 매우 교훈적이다. 어젯밤만 하여도 어느 페이지의 한 문장 때문에 나는 실로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였던 것이다.
오늘 같이 비가 내리고 햇빛이 사라진 날, 왕가위가 만든 영화 <화양연화>를 다시 보면서, 영화를 보는 나의 눈이 꽤 달라졌다 여길 수 있음은 다행이다. 영화가 발표된 2000년이면 내가 어느 건물의 현상설계에 당선될 무렵이었고, 호기에 찬 나날들 이었다. 투시적 건축의 외관에 비하여 실내의 어둠이나 그늘 따위가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했다 할까? 속내보다 겉치레가 우위였던 때다. 아마도 그때 본 이 영화에서는 연애의 감정이나 재즈풍의 음악에 더 열중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오래된 영화는 여전히 볼만하다. 벽과 문 등으로 고정된 프레임의 밤 장면은 단순하게 지속되는 것이지만, 그런 가운데에 전등의 불빛이나 창의 반대편 불빛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어둠과 그늘의 교차는 매우 활기찬 것이다. 예를 들자면, 그 때마다 바뀌는 여주인공 장만옥의 치파오, 그 디자인과 색상은 뿌연 밤 공기 속에서 빛나는 보석이 된다. 어둠 속이므로 더욱 빛나는 색. 그것이 던지는 내밀한 언어. 내내 그런 것에 귀 기울이다가 진짜 대사를 많이 놓치고 말았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그늘과 어둠이 만들어 내는 공간을 예찬하였다. 그리하여 밝음에서 당당한 서양의 건축에 비하여 어둠과 그늘의 건축은 또 하나 동양의 특질임을 관찰한다.
왕가위의 영화는 꽤 서양풍이다. 그럼에도 어둠의 깊이를 관찰하는 동양적인 접근은 일상적이 될뻔한 장면에 절제된 품위를 더해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든다. 그러므로 중국풍의 화려한 색상은 하나도 천박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다가 나도 모르게 내 뱉는 말. “우이 씨~ 이런~ 천재들이라니.” 어두움을 발견하여 예술로 만들어 낸 두 거장 앞에서 나의 일천한 재주는 암흑처럼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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