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말하다
도서관에서 빌린 건축철학 책 2권 / 발터 벤야민, 자크 데리다. 결국,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였다. 그분들의 철학이 어려운 것과 나의 독해 능력이 큰 탓일 테다. 하지만, 역자의 번역에 대하여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 생각한다. 활자와 씨름하다가 답답하여 유튜브를 열어 강신주와 진중권의 강의 영상 토막 몇 개를 보고, 그분들이 무슨 말을 하려 했던지 어렴풋이 이해하였으니. 분명 글의 전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번역서에 관한 강신주의 말 중에 뼈가 있다. 직역과 의역에 대한 견해이다. 독자가 책의 내용에 접근하기 위하여는. 잘못된 의역서를 보는 것보다는, (언어 체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원문을 충실히 직역한 것을 보는 것이 나을 거라는 거다. 가장 읽기 힘든 경우는 역자가 자신 있는 부분은 의역하고, 자신 없는 부분은 원문 직역해서 혼용해 놓은 경우라는 것이다.
또한, 번역에 대한 다른 안타까움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경우 노회한 학자들이 주로 말년에 번역서를 의역으로 출간하는 데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학생 또는 약관들이 이론서를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학문이 여물지 못한 상태에서 앞의 경우처럼 직역, 의역을 무책임하게 섞어놓음으로써, 독자를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내 책장에도 그런 책이 많다. 심지어 학창시절, 내 친구들이 번역서를 출간하여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대학원생 등 예비 학자들이 자신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서둘러 번역하려는 조급증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경제적인 이유일까? 아니면 주체할 수 없는 학문에 대한 열의일까? 그렇지 않으면 게으른 노학자들의 책임 전가일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기에 망정이지, 서점에서 샀더라면. 나는 책에 실망하고, 역자를 무척 원망하였을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