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은 22년도 겨울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찔끔찔끔씩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결혼하면서 남편과 함께 할 취미 정도는 있으면 좋겠어서 같이 다녔다. 덕분에 잠수는 좋아하지만 수영은 못했던 내가 자유형, 배영, 평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언젠가는 꼭 배워야지'라고 심심치 않게 다짐해 왔던 2가지가 운전과 수영이었다. 우리 엄마가 멋있다고 좋아하는 접영은 배우다가 너무 어려워서 접었다. 허리에도 부담 간다는 말을 듣고 더더욱 시도하지 않게 되었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PT를 받으면서였던가 좀 다치면서 운동을 하다 말다 쉬게 되었고 그렇게 한 1년 정도 수영을 안 했다. 오빠는 수영이 꽤 맞는지 내가 안 가도 혼자 새벽에 일어나서 수영장을 갔다가 출근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사를 왔는데, 마침 1층에 지역구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이 있었다. 수질도 맑고 깨끗하고 부유물도 거의 없으며, 지상에 있어서 너무 습하지 않고, 자유수영 인원도 25명 정도로 붐비지 않아서 좋다. 단점은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 9월, 10월 모두 수강신청은 광탈했고 자유수영도 1시간 전에 가서 번호표를 받아야 입장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자유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1주일에 1-2번 갈까 말까 했는데 이사한 지 몇 달이 지나고, 최근 들어 주당 기본 2-3번은 가게 되었다. 이 글은 '나는 왜 계속 수영을 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 나는 계속 수영을 하게 되겠구나'라는 마음을 먹었던, 아주 사소하지만 강렬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지난 10월 9일, 외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원인은 뇌수막염과 수두증이었다. 갑작스러운 고열로 화장실에 쓰러진 할머니를 엄마가 발견했고, 그렇게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신지 2주 만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뇌에서 물을 빼는 과정에서 출혈이 생겼고 그로 인해 뇌가 눌리게 되면서 점점 정신을 잃으셨다. 전반적인 몸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심정지가 왔고, 마지막에 본 할머니 모습은 눈을 멍하게 뜬 채로 관에 의지해 숨만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마지막으로 면회를 했던 사람은 나와 오빠였다. 나와 오빠는 할머니 귀에 대고 복음을 전했다. 오빠는 할머니가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마음이 복잡했다. 평소에 고혈압과 당뇨 외에 큰 지병이 없었던 할머니가 너무 빨리 돌아가셨으니 황망하기도 했고, 복음을 전했다는 안도감도 있었고, 그로 인해 가족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에 감사함도 있었고, 왜 좀 더 일찍 천국에 대한 말씀을 들려드리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밥을 먹고 자연스럽게 수영장으로 향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모를 팽팽하게 당겨 쓰고, 수경을 머리에 잘 맞추고, 입수한다. 물은 가슴 윗부분까지 온다. 잠시 수온에 적응하면서 수경에 물이 안 들어갈 정도로 팽팽한지 얼굴을 잠시 물속에 넣어 체크한다. 그리고 바로 스타트를 한다. 그때 느꼈다. '아, 나는 계속 수영을 하게 되겠구나.'
나는 물속에서 스타트할 때의 느낌을 가장 좋아한다.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발로 벽을 차 앞으로 나아가면, 마치 천 개의 손길이 나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느낌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물속 세계가 나를 반기는 기분이랄까. 눈에는 물결에 일렁이는 타일들이 보이고, 물은 빈틈없이 내 몸을 감싸고 기분 좋게 압박해 온다. 물이 가득 차서 웅웅 거리는 특유의 소리만 들린다. 어떤 날에는 (과장하자면) 마찰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가 하면, 어떤 날에는 물 먹은 솜이 된 것처럼 몸이 무겁다. 하지만 몇 바퀴 돌다 보면 물속에 들어갔다가, 물 밖에 나갔다가 하는 반복적인 동작패턴에 익숙해진다. 숨을 규칙적으로 뱉었다가 내쉰다. 그러면 시야는 물 바깥의 세상의 반쯤 정도였다가, 다시 굴절된 타일들로 바뀐다. 그렇게 호흡과 시야가 동일하게 반복된다.
마음이 점점 공백이 된다. 나는 물속에 있기도 물 바깥에 있기도 하지만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은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그냥 마음이 비워진 상태로 물살만 계속 가른다. 그렇게 한바탕 수영을 하고 나면, (같이 수영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 마음속에 묵은 짐들과 때들, 정신없이 떠오르는 감정들과 생각들을 내쉬는 숨과 함께 물에 다 풀어놓고 나오는 느낌이 든다. 그날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후회와 감사함을 여러 번 뱉었다.
나의 소중하고 착한 할머니, 맛있는 도토리묵을 만드셨던 할머니, 밤을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그 뒤로 매년 뒷산에서 밤을 주워왔던 할머니, 자식과 손녀손자들에게 아쉬운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던 할머니, 어디가 아파도 내색하지 않던 할머니, 바다와 산 여기저기를 여행하기 좋아했던 할머니, 그 연세에 대학생들이나 타는 스피드보트의 스릴을 즐길 줄 알았던 할머니, 곁에 앉아서 이야기하면 '그렇지' 하면서 맞장구쳐줬던 할머니, 가깝게 지내던 같은 동 할머니의 죽음을 직접 보고 정리해 준 할머니, '그 할머니가 고마워했을 거야. 좋은 곳 가셨을 거야.'라는 내 말에 '그랬을까? 정말 그런 게 있을까?' 라며 잠시 생각에 잠겼었던 할머니. 사랑하는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