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자가 바보 취급받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손가락질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교과서와 영화는 권선징악을 말하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권력과 자본이 진리를 재정의하고, 시대의 편의에 따라 ‘옳음’이 바뀐다. 예전에는 틀렸던 것이 지금은 맞고, 진실은 침묵당하며, 진리를 말하는 자는 고립된다.
이러한 불합리는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철학적 병리다. 인간은 문명 속에서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 그 시대의 ‘진리’를 만들어내며 살아간다. 진리는 더 이상 존재의 본질이 아니라, 소비되고 조작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철학은 무엇을 말하는가?
플라톤은 『국가』에서 “진리는 동굴 밖에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림자만을 진리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동굴 밖으로 나가려는 자는 눈이 부셔 비웃음을 당한다. 현대사회에서 진실한 자가 바보 취급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동굴 밖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기술문명이 인간 존재를 ‘수단’으로 전락시킨다고 경고했다. 인간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고, 효율과 생산성만을 추구한다. 진리는 존재의 본질을 묻는 데서 시작되지만, 우리는 그것을 외면한 채 살아간다.
도덕적 회복은 가능한가?
철학자 알래스데어 맥킨타이어는 현대 도덕이 감정주의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옳다”는 말은 “나는 좋다”는 감정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 삶의 목적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번영하는 삶이다. 덕은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성품이며, 실천적 지혜는 상황 속에서 무엇이 덕인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도덕적 회복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작은 실천의 연속에서 시작된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불합리함에 침묵하지 않는 자세. 이 모든 것이 도덕적 회복의 씨앗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리를 향한 삶은 고독하다. 그러나 철학은 말한다: “진리는 실천 속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자기 성찰: 진리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 도덕적 실천: 타인을 위한 선의의 행동은 진리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 공동체적 연대: 진리는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서 진리는 빛난다.
진실한 자가 손가락질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오히려 그 손가락질을 철학적 질문으로 되돌려야 한다. “왜 우리는 진실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는가?”(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