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살리는 소프트웨어
"우리는 우리가 만든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잊어버린 채."
— 한나 아렌트
몇 해 전,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다. 1980년대 말, 유럽을 다녀온 지인이 수세식 화장실을 보고 감탄하던 모습. 당시 우리는 푸세식 변소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고, 그들의 위생시설은 마치 미래의 문명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들이 부러워했던 삶을 살고 있다. 온수 비데가 달린 욕실, 스마트폰으로 조절되는 조명과 난방, 거리마다 넘쳐나는 카페와 문화공간. 그런데도 우리는 이 변화의 깊이를 실감하지 못한다.
삶의 질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물질적 풍요만을 뜻하는가. 아니면 문화적 감수성과 공동체의 미적 경험까지 포함하는가. 철학자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만든 세계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문화는 흐른다. 그러나 그 물결을 피부로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담양, 변화의 물결 속에서
2013년, 나는 담양으로 이주했다. 그때의 담양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었다. 자산가치도 낮았고, 문화 수준도 도시와는 거리가 있었다.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길, 프로방스 마을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하드웨어적 요소였지만, 그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프로방스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동화가 진행되었고, 관광 트렌드는 빠르게 변했다. 선진국에 진입한 국민들의 눈높이는 더 이상 단순한 볼거리로는 만족되지 않았다.
그 시기, 담양은 소프트웨어적 접근을 시도했다. 문화예술 관광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전시와 공연, 창작 공간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 변화의 결과를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 성과도 쉽게 잊힌다.
담빛예술창고, 고요한 공간의 울림
얼마 전, 오랜만에 담빛예술창고를 찾았다. 전시장은 나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카페에는 단 한 테이블만 손님이 있었고, 그 고요함은 마치 시간의 정지처럼 느껴졌다. 십 년 전의 전시기획은 그대로였고, 외부 환경은 오히려 후퇴한 듯했다. 공간 운영진은 과거의 기억에 머물러 있었고, 변화의 흐름은 멈춰 있었다.
문화공간은 고정되는 순간 공동화된다. 전국 곳곳의 공공 문화시설이 운영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인은 끊임없는 자극과 변화 속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미디어와 국내외 여행은 국민의 문화적 니즈를 높여놓았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공간은 금세 잊혀진다.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닌, 문화를 생산하는 곳
카페문화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닌, 문화를 생산하는 곳이어야 한다. 공간은 사람을 담고, 사람은 이야기를 만들며, 이야기는 문화를 형성한다. 그 흐름을 읽지 못하면, 아무리 예쁜 인테리어도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전시기획은 국내외 트렌드를 읽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획자의 현장 경험과 지속적인 행사 탐방이 필수다. 문화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끊임없이 숨 쉬고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공간은 ‘촌구석의 그렇고 그런 방치시설’로 전락하고 만다.
지방도 수도권 못지않은 문화수준을 보여야 한다
이제는 기초지자체, 즉 ‘촌’이라 불리는 곳이라도 수도권 못지않은 문화수준을 보여주지 않으면 대도시 탐방객을 유치하기 어렵다. 생활인구는 문화적 감수성을 따라 움직이고, 그 흐름을 읽는 자만이 지속 가능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문화는 인간이 만든 가장 정교한 거울이다."
— 미셸 푸코
우리는 그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앞을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가. 담양의 문화는 흐르고 있다. 그 물결을 느끼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그리고 그 흐름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