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의 렌즈

외부 시선이 던진 질문

by 예술짱

예술은 늘 내부에서 시작되지만, 외부의 시선이 그것을 정의한다.

'프리즈 아트페어 서울'은 그 외부 시선의 결정체였다.

그것은 단순한 아트페어가 아니라 한국 미술시장이라는 오래된 방 안에

거대한 렌즈를 들이댄 사건이었다.


렌즈는 왜곡하지 않는다. 다만 드러낸다.


프리즈는 한국 미술의 구조적 불균형을 드러냈다.

화랑 중심의 폐쇄적 생태계,

몇몇 작가의 상업적 독점,

옥션을 통한 세컨더리 시장의 불공정 거래 등,

이 모든 것이 프리즈의 렌즈 아래에서 적나라하게 확대되었다.


그 렌즈는 왜곡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외면해온 진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대중의 시선이 깨어난 순간


프리즈는 예술가를 위한 무대였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대중에게 있었다.

예술은 일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단어가

미술에도 적용된다는 현실,

그리고 한국 미술이 세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대중의 시야를 흔들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창문을 열고

바깥의 공기를 처음 들이마신 순간과 같았다.


프리즈는 무엇을 원했는가?


프리즈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10년 주기의 새로운 시장 개척?

국내 자본(블랙머니)의 흡수?

혹은 단순한 문화 교류?


우리는 그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던진 질문이다.


“한국 미술은 세계와 대화할 준비가 되었는가?”

“자본과 미학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는가?”

“정체성과 경쟁력은 공존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프리즈가 끝난 뒤에도

우리의 미술시장에 남아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프리즈는 렌즈였다.

그 렌즈는 외부의 시선을 통해

내부를 비추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 미술은

스스로 거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비추고,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재정의해야 한다.


- 한국적 미학은 무엇인가

- 세계가 주목할 만한 담론은 어디에 있는가

- 예술은 자본을 넘어 어떤 가치를 품을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 때,

한국 미술은 렌즈를 넘어서

거울이 될 수 있다.


프리즈는 5년이라는 계약이 끝나면 독립하거나 이 상태로 키아프와 함께 연장하거나 하겠지만,

그 렌즈는 여전히 우리 앞에 있을 것이다.

그 렌즈를 통해 본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세계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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