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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호불호

꽃과 회의

by 잡귀채신

[호]- 하루에 하나정도는 좋아보자.

'꽃'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꽃이라는 것을 감상하고 있을 그런 여유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일단 꽃가루 알러지가 있다. T세포부터 거부하니 낸들 어찌할 수 없었다. 꽃 앞에서 이런 최악의 말도 뱉은 적이 있다. "먹지도 못하는 거". (그런 연유로 튀겨먹으면 기가 막힌 아카시아는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 어떤 협력사 로비에 있는 화병을 꽤 오랜 시간 지켜보고 나서 깨달았다. 꽃이라는 게 아름답구나.

단순한 모양의 중첩된 겹들의 반복이 가져오는 예상가능한 복잡성. 프렉탈성. 복잡해 보이던 것에 질서가 드러나는 순간의 해방감. 이렇게 오래 안 들여다보았으면 어쨌을 뻔? -뭐 저기 리셉션에 앉아계시는 빈 동공을 가진 영혼의 반의 반 정도로 살고 있었겠지- 게다가 이 깔! 영원히 잠들어있던 어떤 시신경을 일순간에 깨우는 색. 그 쨍한 느낌. 그 꽃들이 적절히 모이거나 흩어짐으로써 이루어내는 화려함.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조형과 색들의 하모니. 이를테면 빨강과 초록의 뻔하고도 촌스러울 것 같은 불안한 조합이 경계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어울림'을 이루어내는 것. 사람을 환장하게 하는 요소를 모두 갖춘 요망한 생물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다니! 감각하는 나의 회복을, 협력사 직원의 지각 덕분에 얻게 되다니! 하지만 어쩐지 생화가 맞는데 향기가 없고 벌도 나비도 뿌리도 없이 이렇게 황망하게 꾸며져만 있는 것이 보기가 딱해진다. 슬슬 고질병인 과몰입이 초입에 들어서자 그때 딱 만나기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넌 이눔아 오늘 이 꽃들 때문에 살았어. (하지만 나에게는 누구를 죽이고 살리고의 그런 파워는 없음. 아주 당연함. 극호.)





[불호] -하루에 하나만 싫어하자.

세상 모든 회의 10개 중 9.5개는 계획하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빡빡하게 100%로 굴진 않는다.) 시작시간과 종료시간을 정해두고, 안건도 미리 정해두고 참석자도 정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연한거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는 말이지. 갑작스럽게 '30분 뒤에 긴급회의. 가능한 사람은 일단 모두 참석바람!!'라고 통보가 오면 그때부터 행복해지지 않는다. '회의'가 나를 길들이지 못하는 상황. 매우 싫은 상황. 이 상황이 전체 회의 수의 0.5를 초과하게 되면? 응 그건 안될 일. 하지만 규율이 없을 때 야생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란다. 안될 일들이 요즘 자주 벌어진다.

그 안될 일이 벌어지면 : 회의실에서는 회의대신 일방적 전달사항들만이 있을 것이며, 갑자기 노트북을 연결하라며 시간을 잡아먹을 것이며, 하필 HDMI 케이블이 뻥나 있을 것이며, 블루투스는 당연히 안잡히고 지랄마법을 부릴것이며, 중간에 들어온 사람이 '무슨 일이냐'며 다시 처음으로 리와인드할 것이며, 구조의 문제는 다시 방치되고, 미리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아 헛소리를 의견이랍시며 말하게 만들것이다. 이것은 오늘 중에서 가장 싫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밤샘은 정상화되고 품질하락은 물론이고 이직률 상승을 초래했다.




좋은거 하나 안좋은거 하나, 이만하면 괜찮은 하루였다.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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