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이

by 잡귀채신



동동이는 내 할부지 애칭이다. >_<




친밀히 사랑하는 나의 외할아버지가 올해 100세(만 99세)가 되신다.

불어에서는 숫자 70부터 갑자기 20진법을 따라버리는데, 99는 (quatre-vingt (80) + dix (10) + neuf (9) ) 꺄트흐벙디즈뇌프 로 아주 복잡하게 읽힌다. 프랑스 인들도 그들의 숫자 표현에 질색하긴 하는데, 할아버지의 만99세를 뵈니, 이 '켜'들을 표현하기에는 불어식밖에는 없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이 겹겹의 무늬 다음에 오는 100이 cent로 단순해지는 유쾌함을 어떤 언어가 감히 따라올까?


백세 어르신 동동이는,

그 연세에도 자전거를 타고 장작을 패신다. 아주 희망적이고도 놀라운 사실은, 복근도 있으시다는 점. 복근이라는 게 뭐 거저 생기나? 그만큼 삶의 여정이 험난했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 오류 때문에 군대를 두 번 다녀오셨다.(물론 군시절 복근은 이미 빠진지 한참오래) 다행히도 최 후방으로 가셔서 군시절(전쟁시절) 이야기를 무슨 보이스카웃 캠핑 다녀온 것처럼 얘기하시는데, 그래도 전시상황인데 당연히 힘드셨을 테지만, 힘든 얘기는 1도 안 하신다. 그게 더 사람을 강해 보이게 한다는 걸 노리신 듯.ㅋ (날으는 할부지 위에 드론띄우는 손녀)

그때의 그 '여행'이 좋은(?) 기억이셨는지, 지금도 그에게 '여행'은 넘나 좋은 것인 분. 희대의 럭키가이. 태어난 곳에서 거의 평생을 사신 분. 매일 아침 맥모골 1잔과 매일 저녁 반주 1잔씩 꼭 하시는 분.(거의 40여년 이어온 루틴) 삼국지를 좋아하시고, 손녀와 체스 두기를 좋아하시는 분. 손녀 이겨먹는 게 최고 낙이 신 분. 살면서 한 번도 햄버거 피자를 먹어 보지 못(안) 하신 분. 크림빵 이불에 숨겨뒀다가 손녀 오면 다 녹은 크림빵 주시는 분. 대략 이런 분이시다.

가족 중에서 나와 케미가 가장 좋다. 할아버지도 자손 중에서 나를 제일 좋다 하시고, 나도 피붙이 중에서 할아버지를 제일 좋다 한다. 서로 좀 많이 닮았다. 불안한 눈빛과 거친생각이 다 할아버지로부터 왔다. 닮은 사람끼리 서로 좋아 죽는 걸 보면 두 사람은 자기 자신도 아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듯. 내가 이 집안의 막내이기도 하고, 당신이랑 똑 닮은 것이 여자버전으로 나온 게 그저 신기하고 귀여우신 듯. 난 그 마음 너무 잘 알고 잘 써먹을 뿐. 60살 차이를 극복한 우정의 핵심은 역시 할아버지 손에 있다. (혹시나 상속 등의 불순한 의도는 의심 거두시길 바란다. 이미 한참 전에 증여를 다 끝내셨다.)

눈이 침침해서 애니팡은 이제 접어야 한다며 속상해하는 할아버지를 보았을 때는 내 미래가 보여서 조금 안심되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 의미 없는 킬링타임용 게임에서 벗어나긴 나겠구나 하고. 죽을 때까지 할 건 아니로구나. 어릴 때 흙바닥에서 돌멩이 던지면서 놀던 거랑 애니팡 중에 뭐가 더 재밌냐고 물으니 당연히 애니팡이 더 재밌다고 하셨다. 참 잘 만든 게임임에 분명하다.

내가 무단결석하고 미운짓 할 때에도 할아버지가 도피처가 되어주셨고, 내가 영화하겠다고 까불거린 것도 할아버지를 믿고 그랬다. 술도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셨고, 첫 직장에서 하늘 같은 부장님께 싀~원한 말씀 올린것도 할아버지가 시켜서였다. 죽은 자에게 시집 갈 순 없어서 식음을 전폐했을 때에도 할아버지가 어차피 허락하지 않아서 못하는 걸로 뒤집어 써 주셨다. 가족 중 유일하게 내 비혼 찬성하셔서 나는 편하게 골드미스로 다리 뻗고 엄살 부리고 있다. ㅋ

20년째,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여행이라도 실컷 하시고 계신데, 앞으로 딱 20년만 더 지속되면 참 좋겠다. 아니... 30년? 쓰는 김에 50년? (...) 이번에는 비행기가 부담스럽다 하셔서 서해안과 남해안을 쭉 다 돌고 올 생각이다. 그동안 신비주의로 말씀 안 해주신 첫사랑 풀 스토리도 이번에 까시기로 했으니, 필참이다. (먼저 가신 외할머니께 죄송.. 외할머니는 전 생을 털어서 할아버지가 유일한 남자다. 결혼하고 10년 뒤부터 사랑이 시작되셨다고 하셨다. 할머니도 신기한 분이시지만, 10년만에 와이프 사랑 얻어낸 할아버지도 신기하심.)


명절은 두렵지만 할아버지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

100 세왕의 방패를 들고 그 어떤 잔소리도 다 받아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짜릿하다.

이모 삼촌들 숙모들 다 드루와. 내 할부지 등에 업고 이중극점좋은구경 보여준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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