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일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단어와 말들 없이 살았다.
말과 단어 취향 온갖것들로 난간과 복도와 실을 만들어 그 속에서 지내는게 삶 같은 것이라면 나는 최근, 정말로 언덕같은 데 그냥 맨몸으로 있었다. 살지도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부디 말을 하고 단어를 모으고 취향을 뽐내며 시끄럽게 살길 바란다. 그게 낫다.
조금 다른 얘기다.
요즘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난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특정한 사람들이다. 누구를 위한 것도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자신이 보는 세계를 보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이 버린 것이든 잊고 있는 것이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개의치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책임있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아이 서울대 보내는 이야기가 인간적인 빛과 어둠에 대한 이야기의 우위에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전시행태가 고운 시선으로 보아지지가 -도무지-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쓰기 플랫폼이라면 오로지 읽기만 하는 직책이 있어야한다. 많아야한다. 다 한번은 읽어보겠다는 포부정돈 있어야할 것이다. 조회수나 라이킷 숫자만 보지말고. 만든사람도 안읽으면 누가 읽노?조금만 공들여 디깅해봐도 진짜 읽을만한 글과 숫자만 큰 글이 딱 갈려보인다. 나는 한때 넷x릭스의 소속으로 '보기만하는 사람' 역할이었다. 그들은 그런데에 돈을 안아꼈다. 그때는.)
표현의 동기는 오로지 그 자신 내면의 필요와 아주 개인적인 시선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절대적으로 타협없는 진정성을 가져야한다. 긴 시간 고독한 몰입과 외로운 싸움이 필수적인 이유다.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건 분명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며, 모두가 할 필요도 없겠고, 아무도 하지 않아서도 안될 일이다.
후원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시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되면서 나같은 예술가에 대한 생각은 마이너가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나는 공기를 읽고 눈치를 챙길 줄 알아서 생각보다 돈벌이에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하여, 예술가 수호를 막아서는 고질적 문제인 '경제적 독립'이라는 주제를 건들여보기로 했다. 예술가가 뻘밭에서 조용히 만들어낸 것을 꺼내다가 '진주'라고 명명해 주는 것도 결국은 후원자의 몫이다. 예술가는 진주를 모르기도 하고 진주에 관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세에 깃발들고 맨날로 뛰어나가 동지들의 피가 튀는것을 보고 함께 울부짖을 것인지, 아직은 총알을 모으고 전술을 갈고닦아야할지. 후자쪽의 기회가 있어보여서 다행인 것 같다. 처음으로 내 피가 '이 길이다!'라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말하자면, 듀스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돈"이라는 이야기다. 깊이 있는 창작과 자신의 세계에 대한 책임감 을 가지고 목소리 내는 이들을 이 세상에 발 붙들기 위해 당분간 좀 집중하기로 했다. 드디어 내 소명을 찾은 것 같아서 몹시 흥분된 상태다.
부디 멈추지 않고 정진하고 계시기를 바라는 바다.
부디 먹힐 것같은 걸 만들지 마시고 자신의 깊은 속 그 끝까지 잠수해 들어가보시기를..그리하여 폐가 막히고 고통에 몸무림치다 아가미를 얻으시길. 제발 성게나 전복일랑 딸 생각도 마시고. 그 속에서 그저 마음껏 헤엄치고 활개를 치고 계시기를. 깊은 눈은 그 모습을 귀하고 기쁘게 지켜보게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