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딱 한번 홍콩영화스러운 장면이 있다.
7년쯤 전, 오늘 같은 날 새벽 4시쯤.
퇴근 길..이라고 하기도 좀 그런게 집에 가서 샤워하고 옷만 갈아입고 다시 출근이기 때문에 [외출]이라고 해야 적당한 아무튼 그런걸 하고 있었다. 가로수길 쪽으로 걸어서 논현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혼자 걸어가는 미미인형같은 언니들이 많았다. 땅이 꺼져라 땅에다 고개를 박고 바퀴벌레 기어가듯 걸어가는 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언니들. 그녀들은 기능은 전혀 없을 것 같은 조막만한 가방을 앞뒤로 흔들면서, 굽이 높은 구두를 아무렇게나 구겨 신어도, 삐끗 거리지 않는 게 신기했다. 내가 말은 언니들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적어도 대여섯살은 어렸을 것이었다. 개중에 좀 자주 마주쳤던 전지현느낌 언니가 있었는데, 누가 수상한 놈이 따라붙으면 우리는 따로 그렇게 하자 말을 맞춘 것도 아니면서 그냥 일행인 것처럼 잠시 같이 걷곤 했다. 제대로 인사를 한 적은 없었다.
그날도 전지현st언니와 속도를 맞추며 걷고 있었는데 그녀가 편의점으로 들어가길래 나도 모르게 청소기에 빨려들어가는 먼지처럼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온장고에서 꿀물 두개를 꺼냈고 먼저 말보로레드를 결제하던 그 언니 옆에 올려놨다. 그 언니는 '이거 같이 계산 해 주세요'하시더니 나를 보고 윙크를 했다. (나 여자임) 그때 나는 심각하게 내 성적 정체성을 의심했는데. 그냥 그렇게 예쁘고 다른 세계관의 신비한 존재가 차원을 뚫고 내 눈 앞에 터치된 데에 대한 찌릿함 같은 거였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자마자 곧바로 내 팔짱을 끼시더니 앉아서 마시고 가자고 하셨다. 이런분의 향내나는 제안을 어떻게 거절하지? 의문을 품으며 음료수를 1시간 동안이나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현재얘기는 하나도 한 게 없고 그저 미래 꿈얘기만 1시간을 내내 했다. 사실 그때 나는 미래고 나발이고는 생각지도 못할만큼 지독한 과거를 잡고 놓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그때 편의점에서 그녀와 꿀물 한 병을 마신 이후로는 생각의 무게추가 조금 가까운 미래쪽으로 넘어오게 되었던 것 같다. 현실은 나에게 지옥불이 타고 있는 거대한 고문 기계였고 내가 나를 방치하며 고문하는, 나와의 이상한 관계맺기도 좀 브래이크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본인을 엑스트라로라도 꼭 써 달라고 약속했었는데.. 페이스북 친구도 맺었는데.. 혹시 이거 보시면 연락이 좀 되었음 좋겠당. (이렇게 길게 찌끄리면 이걸 보시게 될 확률은 더더욱 줄어들겠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