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상담소 #7] 가족과의 대화가 힘든 당신께

by 잡다한


안녕하세요.

선선한 날씨도 거의 다 끝나고

이제는 낮 온도가 최고 20도 후반까지 올라갑니다.

지난 <재활>에서 다녀왔던 LA의 날씨가 참 좋았는데

더운 것보다 습한 것이 더욱 힘든 요즘입니다.

더욱 큰일인 것은 아직 5월이라는 거죠.

7-8월에 흘릴 땀의 양이 벌써 무서울 지경이네요.


고민상담이란게 참 어렵습니다.

구조적 어려움은, 고민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

아무리 익명이라지만 이 정도 무명 작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행위는 쉽지 않죠.


그리고 어쩌다 한 번씩 들어오는 고민들에 대해

어떻게 답변해야 뻔하고 일반적인 상담이 되지 않을지

한참을 고민하고는 합니다.

그러다보면 조금 많이 늦어지기도 하죠.


고민상담소는 조금 늦을지언정 여러분의 고민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메일로 보내주신 고민들은 반드시 올라갑니다.

밀린 고민들에 성의껏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고민은

stw9707@naver.com 로.

내일 점심 메뉴는? 노래 추천은? 등등

단순하고 사소한 고민도 괜찮습니다.


그럼 이제 사연자님의 고민을 보겠습니다.



음… 역시나 오늘도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글 하나를 작성하는 데에 5-6시간이 훌쩍 넘기도 합니다.

그만큼 진심으로 작성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시니 기쁩니다.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 고민이 깊으시다는 점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기도 하네요.


이전 고민상담들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제 말이 당연히 정답은 아닙니다.

저는 그냥, 제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드리는 것일 뿐이고

모든 선택은 사연자님이 하셔야 합니다.

책임을 회피하고자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그래야만 사연자님이 후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밑밥을 까냐... 하면

사실 그런건 없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니까요.

그냥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제가 하고싶은 얘기만 주절주절 떠들겁니다.

한번 들어보시고,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웃음)



각설하고, 상담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연자님의 고민을 요약하면

회사에서 에너지를 탕진하다보니, 정작 소중한 사람들에게 쓸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오해를 낳고, 피하게 되고, 관계의 악화로 이어지는 것 같다.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맞죠?)


사람은 누구나 에너지가 한정적입니다.

애석하게도 해야 할 것들은 항상 그 에너지를 넘곤 해요.


에너지의 양이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에너지가 적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거나 누군가의 잘못이 되는건 분명 아닙니다.

그럴 때는, 억지로 놓기보다는 자연스레 놓아질 때까지 달리되

놓쳐진 것들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하지 말자는

[고민상담소 : 할 일이 너무 많은 당신께]를 참고하세요.

이제 본격적인 고민은

그렇게 방전된 에너지 때문에 정작 소중한 사람들에게 쓸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죠.

요즘엔 이것도 '토스트 아웃'의 일종으로 보는 듯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바와 행하는 바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그릇에 대한 문제도 물론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그 대상이 가족이 될 때

얄궂게도 이중적인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가족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과

가족이니 후순위도 이해해주겠지라는 또 당연한 생각.


저는 이 고민을 읽으며

두 가지 에피소드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한 개는 사연자님을 위한

한 개는 사연자님의 어머니를 위한 에피소드 입니다.



먼저 첫 번째부터.


아실 분들은 아실 텐데

저는 군대를 육군 장교로 다녀왔습니다.


임관하자마자 참모과장을 맡게 되는 대참사가 있었는데요.

굉장히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또 한편으로 저를 단단하게 하는 값진 경험들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여러 사람들에게서

각자의 인생이 담긴 고민들을 마주하며 배우기도 했죠.


그 중에, 군대에는 '행정보급관' 이라는 직책이 있습니다.

전문 실망러인 중대장이 부대의 아버지라면, 행정보급관이 부대의 어머니 같은 느낌이죠.

* 군필자분들께 : 부대는 중대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X끼들아! 할 수는 없으니, 실망이라도 하는 수 밖에요.


일하다보니, 많이 친해진 행정보급관님이 있었는데

그분은 부대 내에서 꽤 명망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하루는 저에게 고민이 있다며 털어놓으시더라고요.


무슨 고민인가 하니,


과장님, 제가 가정에는 어린 딸이 두 명 있습니다.
그리고 부대에는 70명이 넘는 부대원들이 있습니다.
장병들의 고충상담을 야근까지 하며 8시간이 넘게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끊임없이 반복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너무 힘들더라고요.
고민 상담이라는게 사실 쉬운 게 아니거든요.

부대에서 고민상담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정작 제 두 딸과는 대화하지 못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날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우리 부대원이지만, 남의 자식들인데.
남의 자식들 이야기는 하루종일 최선을 다해 들어주면서
정작 내 아이들 이야기는 들어주지를 않았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자괴감이 몰려왔습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그런 부분에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사연자님과 아주 비슷한 고민이죠?

안타깝게도, 그때의 저는 그런 이야기에 대해

이렇다 할 해결책이나 조언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행정보급관께서는 결국, 다른 직책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물론 이것 때문만은 아니고요, 여러 상황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사실 옮겨간 직책이 더 일이 많고 야근을 많이 하는데도

장병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혼자 일할 수 있는 참모직이다보니

힘들어도 이게 낫다며 웃고는 하셨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과연 어느것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가.

모두를 잡을 수 없지만 모두 잡아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가.

혹시 어떤 것을 핑계로,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랬던 경험이 이제는 사연자님께 조언을 드릴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제가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회사를 옮겨야 끝난다는 일차원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애초에 고민도 아니었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답을 알고 계시겠지만,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첫 번째는 '회사에서 에너지를 90%만 쓰고, 아낀 에너지를 가족과 친구에게 쓴다'

두 번째는 '회사에서 쓰는 에너지를 줄일 수 없다면, 그럼에도 가족과 친구에게 에너지를 더 쓴다'


아, 네네. 벌써 들리네요.

누가 몰라서 그러냐. 알고 있는데도 안 되니까 그런 것 아니냐.

그것도 일차원적이다. 등등...


그런데요, 정말 그것 뿐입니다.

왜냐면 사연자님은 회사도,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놓치고 싶지 않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건 사연자님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사람에게도 놓칠 수 없는 것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놓치면 안 되겠죠. 어떻게든.


그럼 이제 선택을 해야죠.

그런데 저는 이미 사연자님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부터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고, 지키고자 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그것을 조금 더 지키고자 노력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화는 어려울 때는 어렵지만, 쉬울 땐 그만큼 쉬운게 없거든요.


어머니가,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사연자님을 무척이나 아끼기 때문에, 그만큼 궁금하기 때문에 대화를 원하셨던 것이라는

아주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이미 해버렸습니다. 하하.



두 번째 에피소드.

이건 어머니를 대명사로 하는

사연자님과 오해가 쌓이는 관계를 위합니다.


대학생 때, 정말 고마웠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대학생활 전반과 공부 등 도움을 받은 일이 많았어요.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졸업 후에는 소원해졌죠.


저는 그 친구에게 고마운게 참 많았고

저에게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에

서로 바쁜 와중에도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제 대학 생활은, 대충 이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몇 주 동안 안읽씹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바쁘면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에 보낸 연락도, 일이 있어서 전화한 것도 모두 아무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차단을 당한것도 아니고, 딱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저는 많이 당황했어요.

내가 이 친구한테 뭔가 잘못했나?

나는 분명 잘못한게 하나도 없는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긴걸까?


저는 한참을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장문의 진심을 전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친구에게 고마웠던 이유와

만약 관계를 끊을 것이라면 그 이유라도 알려달라는,

소중한 친구에게 나도 모르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만큼은 잃고 싶지 않으니

내 실수나 잘못을 알려주기라도 해 달라는,

여러모로 진심을 눌러 담은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진짜 이러고도 답장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난 정말 할 만큼 했어.


그 메세지를 보내고, 다음 날 점심 즈음에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한 시간이 넘게 이어진 전화를 통해 오해는 풀었지만

이전처럼 돌아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화의 요점인즉슨


“너랑 대화하면 그냥 가벼운 얘기가 아니라
생각을 많이 하고 깊은 대화가 되어서
지금 많이 바쁘다보니 계속 피하고 미루게 돼.”


저는 머리를 한 대도 아니고

세 대 정도는 맞은 것 처럼 멍해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상, 제가 할 수 있는건 없었습니다.

누구의 잘못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서로가 이 문제에 대해 인식한 이상

저는 예전처럼 그 친구를 대할 수 없었습니다.

가벼운 이야기를 하자니 너무 의식적으로 하는 것 같고

무거운 이야기를 하자니 해결이 되지 않고

그러다보니 몇 번 더 연락을 주고받다가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지곤 했죠.


그 이후에도 결국 멀어졌지만 오히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과연 나는 그 친구를 정말 친구로 대했는가

혹은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만 하고싶은 상대였는가

나는 고맙고, 챙겨주고, 인연을 이어 나가고 싶어 했던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않은 얘기입니다.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쓰게 될 줄은 더욱 몰랐고요.


어때요? 저와 제 친구의 이야기가

마치 사연자님과 사연자님의 어머니 이야기 같지 않나요?

(아님 말고)


갑자기 이 경험이 생각났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대화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수 밖에는 없다는 다소 뻔한 답변을 드림과 동시에


과연 나는 그 대화를 편하게 하고 있는가

혹은 대화를 위한 대화인가

그 온도와 주제는 서로에게 동일하게 느껴지는가

만약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대화로 부를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을 품어보시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타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왈가왈부 하기는 참으로 어렵고 꺼려집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님이 사연자님께

‘진정한 대화’를 원하고 계신지는 의문이 듭니다.

단순히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어색함을 타개하기 위한 일방적인 말걸음 말고요.

그렇기에 사연자님이 그 말걸음에 불편함을 느끼고 피하게 되신게 아닐까요.

과연 다른 주제였어도, 부담없는 주제였다고 하더라도 같은 결과였을까요.


저는 그래서, 어머니의 관점으로 봐도

개선할 점은 분명히 있다고 보여집니다.

대화할 주제는 많고 많은데, 굳이 자녀가 가장 힘들어하는 회사 이야기만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죠.


진정한 대화란, 모두가 편해야 합니다.

지금 사연자님과 가족들은 진정한 대화가 되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당연하겠죠. 이젠 그냥 대화도 없다고 하셨으니까요.


저는 진정한 대화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바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감히 말씀드리건대

사연자님이 이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그리고 만약 가능하고, 마음이 열려 계시다면

어머니께 이 글을 보여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냥 왜,

인터넷에서 본 글인데 괜찮아보여서 공유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


혹은, 이 고민과 상담을 핑계로 진정한 대화의 물꼬를 터 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연자님도 괜히 마음이 안 좋고, 신경쓰이니까 이런 고민을 하시는 거잖아요.


지금이 타이밍입니다.

한 번 정도는 어머니께 먼저 손을 내밀어 봅시다.

사실은, 많이 기다리고 계실거예요.


이미 이 상황을 그대로 두지 않고

해결하고 개선하기 위한 여러 생각을 하고있다는 점

그것부터 사연자님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이 부모님과 친구, 연인에게 전해지지 않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말을 안하면 모르죠.



한국 속담 중 '말 안 하면 귀신도 몰라'라는 게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속담이기도 한데,

말을 안 하면 정말 귀신도 모릅니다.


이제는 ‘진정한 대화’를 하실 때입니다.


지금 매년 반복되는 이 시간이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더 단단해질 겁니다.

힘내십시오.

내일에는 반드시 더 행복할 테니까요.


모든 고민은 stw9707@naver.com 으로.

나누면 절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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