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났습니다, 아주 잠시 #01
회사를 나오던 날은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흐렸다. 아침 출근길에 우산을 챙겨 나오지 않은 게 오전 내내 찜찜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회사에 도착한 나는 아침부터 바쁜 척 유난을 떨었다. 마땅히 적은 것도 없는 인수인계 문서를 한 번 더 점검하고 앞자리에 앉은 동료에게는 딱히 기대되지는 않지만 화분에 물 주는 일을 챙겨달라는 메모를 남겼다.
마스코트처럼 키우던 화분이었다. 이파리 2개가 포개져 있는 모양이 서비스 로고와 닮았다며 전임 디자이너가 키우던 화분은 그분이 출산 휴가를 떠나면서 내게 맡겨졌다. 디자이너는 1년 전쯤 아들을 낳고 휴가에서 복귀했지만 화분은 아직 내 책상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활엽수 잎처럼 푸릇푸릇한 로고를 내세운 서비스는 5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급하게 접었는데 화분은 가끔씩 물 주는 걸 깜빡해도 몇 년째 멀쩡했다. 겨울을 지날 때마다 곧 죽을 듯 마른 이파리를 떨구면서도 봄이 오면 끈질기게 새 잎을 돋아냈다.
점심식사는 환송회 겸 같은 팀 크루들과 마라샹궈를 먹으러 갔다. 공식적인 점심 회식치고는 가격이 싼 식당이라 평소에는 시키지 않던 처음 보는 메뉴까지 양껏 시켰다. 크루들은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며 부러워했고 나는 커피 한 잔 쏘지 않고 법인카드로 얻어먹으며 담담한 척 재수 없게 질문들에 답해주었다. “유럽에 좀 길게 다녀오려고요.”
사실 담담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퇴사가 아닌 고작 휴가니까. 다만 7년 만에 결심한 조금 긴 휴가일 뿐이다. 회사는 복지제도의 일환으로 3년 근속마다 안식휴가 30일을 준다. 나는 지난해 정확히 입사 6년 고개를 무탈히 넘기며 두 번째 안식 휴가까지 나와 60일 치 휴가가 쌓였지만 아직 첫 번째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바빠서 못 갔던 것도, 나중에 몰아쓰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딱히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굳이 짬을 내어 한 달씩이나 꼭 쉬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예전 꿈에 질려 도망치듯 정착한 곳이었다. 기자가 되겠다며 군 제대 후 대학 편입과 언론고시 준비에 3년을 바쳤다. 그리고 어렵게 합격한 언론사에서 딱 준비한 기간만큼 버티고 이직했다. 처음에는 재밌었지만 그게 다였다. 기자는 직장인이라기보다는 프리랜서에 가깝다. 성수역 근처 사무실로 출근해 직장 동료를 보는 것보다 남의 회사가 있는 강남, 여의도로 출근해 처음 인사하는 누군가에게 항상 점심밥을 얻어먹었다.
그러다 부끄러워졌다. 언제부턴가 글쓰기가 참 편하다고 느껴졌다. 출퇴근길 뻗치기를 하며 취재수첩에 메모를 적고 보도자료를 보고 대충 고쳐 쉽게 기사를 쓰던 손이 민망해졌다. 인터넷에 올라간 기사에는 내 이름이 떡하니 바이라인으로 박혀 있지만 내 마음대로 지울 수도 없었다. “다음 주부터 제주도에 있는 회사로 옮기게 됐습니다.” 나는 다니던 언론사에 통보하듯 말하고 태어나 딱 한 번 가본 낯선 섬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새로 입사한 회사는 크고 작은 일을 거치며 사명을 두 번이나 바꿨고 나는 서울로, 판교로 근무지를 옮겼다. 나는 활엽수 화분에 가끔씩 물을 주며 회사 안에서 제 자리를 지켰다.
직장인들에게는 보통 3년마다 고비가 돌아온다고 한다. 이직 기회가 생기거나 이를 유발하는 매너리즘이 찾아오거나.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한 회사에서 6년 이상 버티면 모든 게 쉬워진다. 어쩌다보니 기자생활보다 두 배 이상 길게 새 직업에 적응했다. 회사에 내 짐을 아무렇게나 쌓아둘 수 있는 책상이 있고, 동료들이 나를 부르는 영어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할 일은 언제나 많지만 다급해하지 않게 되었고 중요한 일보다는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는 융통성을 배웠다. 독고다이로 일하는 기자와 달리 동료와 함께 일해야 하는 직장인에게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남과 같이 해야 하는 일이 먼저였다. 이런 변화들은 편안하고 안정된 직장 생활을 보장하는 동시에 사람을 조금 무기력하게 만든다. 7년째 안 쓰던 안식휴가를 보내기로 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안식휴가 첫날은 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 보냈다. 느지막이 일어나 운동을 하고 파를 넣은 라면을 끓여 먹었다. 여전히 비가 올듯말듯 애간장을 태우는 날씨에 3단 접이 우산을 하나 챙겨 들고 강남에 나가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강남역 근처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집까지 걸어왔다. 그때까지도 비는 오지 않아 또 속은 느낌이 들었다. 챙겨 나온 우산이 거추장스러웠다. 언젠가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는 휴가는 오락가락한 날씨만큼이나 사소하면서 권태로웠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실배 테송을 인용하며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약탈’이라고 표현했다.
“실배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나는 다음 주 스페인으로 떠난다. 약 20일 정도를 그곳에서 머무르는 일정이다. 스페인은 내가 평소에 한 번도 여행지로 생각해보지 않은 곳이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둘러보기야 하겠지만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다. 구태여 찾아볼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익숙함을 피해 떠나는 여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스페인은 내게 최적의 낯선 여행지다. 그 낯섦 속에서 찾게 될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다른 이의 퇴사만큼 비장하지야 않겠지만 내겐 값진 시간이다. 묵은 잎을 떨구고 새 잎을 돋아내던 활엽수처럼 나중에 회사로 돌아와 다시 끈질기게 살아내려면 적어도 그럴듯한 이유라도 필요할 테니 말이다.
2020.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