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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Oct 26. 2022

나는 저녁이 낳은 첫 문장이다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조곤한 사투리가 한 줄의 문장이 되는 저녁이 있다. 그 저녁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순수한 것들로 배를 불려 나를 불러 세운다. 지금까지는 주인 없는 휘파람만이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줄 알았지.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들은 언제나 입술을 좁게 오므리고 혀끝으로 입김을 불어서 맑게 내는 소리들. 라일락꽃 피었던 계절에 모아둔 휘파람을 종이에 풀어내고, 그 위에 수취인 불명의 주소를 적고, 환한 보름달 같은 우표를 붙이고, 사투리로 된 편지를 쓰다 보면 결국 휘파람도 한 권의 고아였던 것. 한 번 내뱉은 휘파람은 주워 담을 수 없는 삶의 밑줄과 같다는 어머님 말씀. 모든 구절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 아픔으로 인해 다른 곳이 아프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저녁 이후의 저녁. 책과 책이 서로의 몸을 끌어당기며 옹기종기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저녁. 나는 그 저녁이 낳은 외로운 첫 문장이다. 휘파람 같은 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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