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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Dec 27. 2021

시인처럼, 쓸데없이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의자는 짐승이다. 건들지만 않으면 절대 위험하지 않은 짐승이다. '개 조심'을 알리는 오래된 골목. 기다란 노끈에 매여있는 의자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본다. 이미 송곳니가 빠져서 무서움보다는 서러움을 풍기는 의자. 한때는 많은 사람의 풍경을 책임졌을 의자. 잠깐 햇볕을 쬐려고 나와 으르렁거리고 있는 의자.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버림받지 않은 의자. 내장을 죄다 긁어낸 텅 빈 의자. 꿈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을 때 어정쩡한 자세로 내 생의 계획을 묻는다. '개꿈'. 한때 사랑했던 말. 특별함도 없이 쓸데없이 어수선한 하루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도 했다. 이상이라는 시인도 그랬던가. 쪼꼬만 돋보기를 꺼내어 아내의 지리가미(화장지)를 끄실려 가면서, 그는 얼마나 큰 행복했던가. 죽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하루가 불타고, 그 장난마저 싫증 나면 다시 아내의 거울을 가지고 놀았던 시인. 미친개에게 물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한다. 대낮의 백일몽처럼 골목을 지키고 있는 의자. 그 텅 빈 의자에 앉아 본다. 시인처럼, 쓸데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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