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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Dec 31. 2021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요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 횡단보도 앞에서 무심코 듣게 된 말. 폐지를 줍는 할머니. 멍하니 녹색 신호를 바라보다 갈 길을 놓친다. 다시 빨간불. 그래도 자식들 대학 다 보내고, 한 놈만 남기고 다 여웠어. 그 사이 도로의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뀐다. 멈춰 있던 차들이 쉴 새 없이 달린다. 잠시 후 다시 빨간불. 횡단보도에는 파란불이 들어온다. 신호등이 건네는 카운트다운. 단 십 초를 남겨놓고 할머니와 횡단보도에 들어선다. 돌이켜 보면 모든 과거가 호구지책.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남겨진 하루를 살 수 있는가. 리어카에 박스가 쌓일수록 마음이 가볍다는 할머니. 건너편의 횡단보도. 이봐, 총각. 그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 그러다 보면 여차저차 살아져. 살아보니까 그게 삶이여. 할머니 그게 아니라, 저도 처자식... 아이고, 내가 몰라봤네. 하마터면 없는 딸 만들어 시집보낼 뻔했네. 올 한해 서운한 맘 있으면, 여그 리어카에 다 실어 놔. 내가 잘도 팔아서 비누라도 바꿔다 줄턴게. 점점 더 이명처럼 멀어지는 하루. 할머니, 고맙습니다. 올 한 해, 아니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니 아니, 하루하루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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