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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Jan 06. 2022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아침 일찍, 경포 바닷가를 걷는 동안 '불가피'란 단어가 들려왔다. 내 곁을 지나던 사람들의 스치는 대화 속에서였다. 그 뒤로 불가피라는 단어가 불가피하게 수시로 밀려왔다 밀려 나갔다. 가끔씩 파도에 부서지는 불가피도 있었지만, 그게 바로 불가피의 일. 새벽부터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과 서핑보드를 타기 위해 거친 파도 앞에 선 사람, 그리고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 모두가 오늘의 불가피에 하나둘씩 묶여 있었다. 나는 그들이 소망하는 불가피를 피해 또 다른 불가피를 찾아 멀찌감치 홀로 서 있었다. 불가피를 기다릴수록 기다림이라는 불가피에 사로잡힌 날들. 슬픔의 의미를 더욱더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불가피는 어쩌면 애초부터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 한 끼 식사를 안 한다고 해서 굶어 죽지 않는 어떤 마음처럼, 불가피는 늘 기다림을 끼니로 삼는다. 그때 곁에 있던 낚시꾼이 하루의 일용할 양식처럼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챈다.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다. 물고기의 이름을 물어보려다가 그만두고는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불가피하게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본다. 그 기다림의 밀물과 썰물을 뚫고 서핑보드 몇 개가 파도의 페이지를 접는다. 식상한 말 같아 밑줄을 그을까 말까 하다가 긋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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