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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Jan 08. 2022

초승달이 헛것처럼 자라나 있다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글을 쓰려는데 손톱이 길다. 아, 손톱이 길면 글이 안 써지는데 어떡하지? 결국 노트북을 덮고, 오늘 하루는 허탕 치기로 한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강릉 앞바다의 풍경. 낯선 풍경이 주는 기분이 곳곳에서 손톱처럼 자란다. 중국 속담에 슬픈 마음을 가진 사람은 손톱이 잘 자란다는데... 잠깐 손톱과 슬픔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다시 아무 생각 없이 강릉 앞바다가 내준 작은 풍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파도 소리가 참 시원하게 들린다. 마치 손이 닿지 않은 등의 미지를 긁어주듯 파도는 과거와 미래의 기억을 반복하여 드나든다. 고민 끝에 바닷가 곁에 자리 잡은 작은 소품 숍에 들러 손톱깎이 하나를 산다.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손톱을 깎는 일은 또 다른 허탕의 재미. 가지런한 열 손가락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 마음 편히 글만 쓰면 되는데, 벌써 초저녁이다. 밤하늘에는 어느새 내가 산 손톱깎이로도 깎을 수 없는 초승달이 헛것처럼 자라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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