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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Feb 09. 2022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었다고 단정하지 않기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한때 공대개그가 유행한 적이 있지. 가령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 같은. 명제만 놓고 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 문제도 공대생들은 너무 쉽게 풀곤 했지. 1. 냉장고의 문을 열고, 2.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고, 3. 냉장고의 문만 닫으면 되는 일이었지. 그보다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도 있었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지. 그때 난 조교였으니까.


산책길, 텃밭에 엉뚱하게 나와 있는 고장 난 냉장고를 보며 왜 슬퍼졌는지 몰라. 코드가 뽑혀 전기가 통하지 않는데도, 자꾸만 꼬리 달린 짐승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지. 나는 그 앞에서 여전히 조교처럼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지. 그 화두는 병 속에 갇힌 새를 꺼내는 일처럼 멀고 아득했지. 적요로웠지. 하지만 병을 깨지 않고, 그 안에 든 새를 꺼내는 방법이란 애초부터 없었지. 마음을 바꾼다고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가끔 이 지구도 거대한 텃밭에 놓인 냉장고란 생각이 들지. 밤낮으로 전기가 들어와 모두 싱싱한 척 살고 있지만, 언제 유통기한이 끝날지 모르지. 전기가 끊기고 코드가 뽑히면, 누구라도 별 수 없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아직도 이 지구라는 냉장고 앞에서 누군가 코끼리를 넣거나 새를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 냉장고의 문을 밤과 낮의 마음으로 여닫고 있다는 사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게 누군지 알지. 누구인지 아직은 나도 모르니까.


텃밭에 놓여있는 냉장고의 문을 열어보았지. 밤이었고, 하늘에서는 별 하나가 불을 켰지. 냉장고 안의 별빛은 마치 코끼리가 눈을 깜빡거리듯 빛나고 있었지. 나는 다시 냉장고의 문을 닫았지. 그때 알았지. 냉장고는 코끼리의 눈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었다고 단정하지 말기. 정답을 찾았다고 꼭 해답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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