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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Apr 19. 2022

그 나라에선 가장 쫄짜다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요즘은 자주 꽃밭에 마음 붙들린다. 군살처럼 배겨있는 흰 제비꽃. 그 나라에선 내가 제일 쫄짜다. 가장 힘이 없고 빽도 없고,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 줄 댈 곳도 마땅치 않다. 그나마 한쪽에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면, 낯가림이 덜한 개미 한 마리가 다가와 빈말이라도 꽃피워준다. 처음에는 개미의 언어를 배우지 못해 그조차 힘들었지만, 요즘에는 드문드문 몇 마디 인사 정도는 나누는 사이. 어느새 어색하게 말문이 막히는 사이. 나는 금세 부뚜막에 쪼그려 앉아 수제비를 뜨는 아이처럼 외로워진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마음 한구석이 더 춥더라는 옛 추억도 떠오르고, 입을 꾹 다물고 수제비를 한 술 뜨던 거뭇거뭇 한 얼굴도 떠오르고, 울자니 서럽고 웃자니 마음 거시기하다는 멍텅구리 슬픔 같은 여자의 얼굴도 떠오른다. 꽃 핀 사연 하나하나 흰 제비 꽃밭에 앉아 편지처럼 읽다 보면, 실수였다며 누군가 뺨이라도 때려줬으면 싶은 하루. 크대 큰 것이 밥 먹고 할 일 없어 우냐 싶을까 봐, 막상 쫄짜처럼 울면 볼썽사나울까 봐, 빈 솥에 물 몇 바가지 더 붓고 장작 몇 개 더 집어넣는 저녁. 마음 솔찬히 매운 밤. 그런 마음들만 모아놓고 사는 흰 제비 꽃밭의 나라. 신발이 없어 지구라는 흙 신을 신고 뛰어다니는 그런 꽃밭의 나라. 제 몸의 열배 아니 수백 수천만 배가 되는 흙 신을 신고도 개미처럼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가는 나라. 그 나라에선 항상 나만 마음 맨발이다. 나도 왕년엔 말이야, 라는 말도 안 먹힌다. 명함도 못 내민다. 흰 제비꽃의 나라에선 내가 항상 가장 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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