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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Apr 21. 2022

꽃들은 어디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나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꽃들은 어디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나. 봄밤, 꽃들이 불을 밝힌다. 불과 꽃. 어디서 본듯한 불꽃. 이름을 알듯 말듯 한 꽃불. 정전이 되면 시들어버릴 이름과 향기. 꽃 이름의 콘센트를 찾느라 허둥지둥하는 밤의 그림자. 이름 모를 꽃은 이름 없는 향기를 겉옷으로 걸치고 밤 산책에 나선다. 불은 어둠을 앞세워 골목의 막막함을 듬성듬성 기록한다. 사람이 어째서 외로운 줄 아니? 새로운 걸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야. 새로움이란 골목의 모퉁이를 돌면 만나는 외로움. 옛 꽃은 사라지고 불빛은 막차처럼 그리워지는 꽃놀이패의 감정.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외로움. 몇 번의 계절이 지나면 현재의 꽃은 영영 사라지고 가로등의 불빛만이 꽃의 정치로 남는 계절. 그때에도 나는 변함없이 골목의 모퉁이를 돌며, 꽃 진 자리를 바둑판처럼 들여다볼까. 이름 없는 나라의 전기검침원처럼 플라톤을 생각하고, 칸트를 지웠다가 다시 니체를 그리워할까. 불행한 미래를 먼저 살다 간 사내들은 알겠지. 봄밤, 전기를 빌어 꽃을 켜는 마음을. 누군가는 이렇게 살면 안 된다며, 마음의 코드를 뽑고 이름마다 전기를 끊고, 지나온 기억의 곡기를 끊고, 한여름 뙤약볕 그늘로 캄캄해지기도 하겠지. 새로운 외로움이 담긴 꽃의 정치. 불과 꽃. 꽃불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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