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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May 03. 2022

이름을 지우며 건너가는 생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모든 관계는 '분명'하기보다 '미묘'하다는 말이 좋다. 틀림없고 확실한 것들은 하나둘씩 모여 여름의 시작을 알릴 테지만, 나는 여전히 봄의 미묘에 붙들리길 좋아하는 사람. 말하자면 어제와 나 사이에는 논리보다 비논리에 가까운 묘함이 존재한다. 오후 내내 플라타너스의 크고 작은 이파리에 정신을 빼앗기면서도, 아직 규정해 내지 못한 어제의 미묘에 대해 생각한다. 먼 미래에만 존재하던 나뭇잎들이 치매환자처럼 하나둘씩 내 기억을 스치며, 플라타너스에서 플라타너스로 건너간다. 그 사이와 틈을 비집고 들어온 기분. 이 기분은 때로 윤리에 가깝다. 정교해질 수 있으나, 미묘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은 분명함과 미묘함 사이에 놓인 또다른 형태의 욕망. 그 순간에도 플라타너스는 햇살에 촌각을 다툰다. 관계에 손이 닿지 않는다. 마음이 닿지 않는다. 손끝이 전하는 간절함을 다시 처음부터 생각하기에는 너무 멀어진 분명한 감정. 애초부터 내 맘대로 소유한 계절이 하나도 없었으니, 지키지 못할 약속처럼 사라지는 봄도 내 맘대로는 아닐 것. 내가 아는 일과 내가 모르는 일이 만나 어떤 분명을 이룰 때보다, 나는 확실히 미묘에 이름을 지우며 건너가는 생을 사랑한다. 그 봄이 남긴 현기증에만 분명한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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