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멀리 우산 하나가 걸어간다. 우산은 비에 젖고 우산 속에 놓인 마음은 비에 젖지 않는다. 다만 귀를 열어 바짓단부터 생각 하나를 적신다. 마음을 고쳐먹는 일이 이리도 힘이 들까. 앞뒤 생각하지 않고 우산을 벗어나면, 모두가 비에 젖는 계절. 우산 없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지독의 연속. 뒤집어진 우산처럼 살 수 있을까. 주인 없는 저수지에 비가 내리면, 나는 홀로 산짐승처럼 살고 싶어, 비처럼 운다. 저수지의 뺨을 때리는 빗소리를 모아 방울방울 눈만 껌뻑거린다. 아직도 세상은 내게 우산 하나 주지 않았으니, 비에 젖는 일이 내겐 우산을 쓰고 걷는 일과 같다. 내 사랑도 그러할 것. 나는 하루하루가 미지여서 나를 더듬어 노래하지만, 나를 끝내 지키지는 못할 것. 내가 나를 매일 처음 보기 때문. 그래서 소나기 같은 우산도 오늘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간다. 멀리서 우산 하나가 걸어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