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새벽이면 몸을 일으켜 글을 쓴다. 연필을 깎거나 펜을 쥐지는 않는다. 생각나는 대로 자판을 두드린다. 가끔 자판을 두드리기에 좋을 만큼 손톱을 깎기는 한다. 새벽에 손톱을 깎다 보면 이처럼 외로운 일도 없다. 외로운 감정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어서, 글을 써서 독자를 만든다. 그러니까 글은 약속 상대가 없는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글이 없는 글을 쓴다. 세상에 없는 독자를 위한 글을 쓴다. 글을 쓰다 보면 그림 생각도 나고, 창밖의 풍경도 보이고, 새벽을 이루는 마음 약한 재료들도 눈에 보인다. 고칠 수도 없고 끝내 퇴고할 수도 없는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까 새벽마다 몸을 일으켜 글을 쓴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글이 나를 쓰는 것이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 된 단어들이 나를 타이핑하는 것이다. 저장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글을. 누구라도 읽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는 글을, 새벽이면 그렇게 글이 나를 깨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