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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Oct 30. 2022

신뢰 게임(Trust Fall)

DON’T LET ME DOWN.

틱톡에서 치와와가 높은 옷장 위에서 앞에 있는 주인만 보고 뛰어내리는 영상을 봤다. 눈을 자기 주인의 얼굴에 고정하고 꼬리를 왕왕 거리며 머뭇머뭇하는 것 같다가, 눈 딱 감고 뛰어내린다. 인간의 베스트 프랜드인 개가 보여주는 Trust Fall이다. 그 영상을 찾으려고 보니 없다;;


Trust Fall의 방식은 A가 선채로 손을 가슴에 모으고 뒤로 넘어지면, 뒤에 있던 B가 A가 바닥에 충돌하기 전에 잡는 것이다. 보통 회사 같은 조직이 동료 간의 협력과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 하는 그룹 활동으로 알려져 있다.


Trust Fall 의 한 일러스트 예시. 1대N 도 있고, 1:1 도 있다.

이걸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앞이나 옆도 아니고 뒤로 넘어진다는 것이 굉장히 무섭다. 내 시야로 확보하지 못하는 곳을 온전히 뒤에 있는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뒤로 기울어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머릿속엔 오만 가지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이 뒤에 잘 있나?’, ‘이걸 가벼운 장난으로 생각하진 않겠지?’, ‘날 대충 잡으면 어떡하지?’ ‘내 몸무게를 감당할 수 있으려나?’ ‘아주 만약 바닥에 부딪히면 어떡하지? 얼마나 심하게 다칠까?’ 등, 없던 서운함도 생길 것 같고 막 그렇다.


뒤로 넘어지는 사람에게 더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 손을 앞으로 모으고 두 눈 질끈 감고 뒤로 눕기로 마음먹는 것일까, 아니면 뒤에 있는 사람을 믿는 것일까?


개의 경우, 내가 뛰어내렸을 때 주인이 나를 잡아줄까에 대한 의구심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간식 같은 특정 대가를 바라지도, 협상을 시도하지도, 재차 물어보며 주인으로부터 개런티를 요구하는 법도 없다. 오직 충성심과 용기만 가지고 행동할 뿐이다. 반면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의심의 왕이다. 의심의 왕답게 두 가지를 모두 의심한다: 내가 뒤로 ‘제대로’ 넘어갈 수 있을까? 만약 제대로 넘어갈 수 있다면, 뒤에 있는 사람이 나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을까?


떨어지는 것(Falling)은 두렵다.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것은 불확실하다. 잘 못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고 뒤에서 일어날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넘은 공포감, 그리고 불확실성과 의구심이 합쳐져 뛰기로 결심한 우리의 집중력을 흐리고, 나를 잡아줄 사람에 대한 믿음을 약하게 만든다.


떨어지는 A를 잡는 B의 일도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A의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내가 적당한 시점에 잡을 수 있을지 등, 떨어지는 A를 다치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준비성, 책임감도 A의 결심 못지않을 것이다. 그래서 B의 역할 조건은 얼마나 착하고 친절한지가 아니다. 준비가 되었느냐, 경험이 있느냐이다.


각자의 의구심을 가진 A와 B를 보증해줄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유일하다. 세상사에서 신뢰 자본을 일구는 방법은 여럿 있고, 그중 하나는 내 행동 안에 꾸준함을 채워 넣는 일이다. 꾸준함이란 매월 대출 이자를 성실히 납부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내 가용 능력 수준에서 최대의 결심을 내린 것이고, 그 결심에 대한 대가를 꾸준한 실행으로 갚아나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B의 역할을 해줄 사람들의 시간을 미리 빌려 얻은 조언에 대한 마음의 고마움을 갖는 것이다.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든든함은 나의 결심과 꾸준함으로 갚아 나가야 한다.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상환이다.


존경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내가 그 틱톡에서 본 치와와의 모습 같다는 느낌이 문득 든다. 그분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일구고 있고, 뭇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으며, 조용히 고생하여 자기만의 방식을 찾은 사람들이다. 영상 속 치와와의 주인도 ‘뛰어!’라고만 말하지, 앞 발을 먼저 든 후 무게 중심을 복근에 집중시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분들과 나누는 대화도 거의 그런 식이다.


‘street cred’ > financial credit

결심에 필요한 것은 통장 잔고나 보증 은행, 쩐주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금융 신용도보다 든든한 것이 개인 간 신뢰 자본이라는 생각을 한다. 실수도 할 수 있고 아예 실패할 수 있다. 넘어지려는 나를 잡아주거나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B, 그리고 내가 B가 되어줌으로 만들어지는 신뢰 자본이 진짜 안전망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과 내가 믿는 사람들이 적립하는 신뢰 자본.


떨어진다는 것은   감고 내리는 액션이고,  액션  꾸준함 믿어 주 사람들이 있다.



essay by 이준우

photo by McKenna Phi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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