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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Sep 25. 2022

인플루언서도 모른다

답을 줄 수 없다

사람들은 타인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그 사회적 관계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싶고, 또 앞으로 내가 얼마나 많은 공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취미가 무엇인지, 무슨 운동 좋아하시는지, 무슨 드라마 보시는지가 주요 질문 리스트였다면, 이제는 기업들마저 채용에 쓰는 MBTI 가 대세다.


16가지의 유형이 사람들의 성향을 편리하게 구분해주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사람과 영원히 공감대의 대척점에 서 있을 것 사람을 1차로 골라준다. 매우 경제적인 방법이다.


나의 MBTI로 말하자면, IDGA-F이다. 난 상관하지 않는다. 난 조용히 MBTI의 독재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역할을 자처했다. 뭐 하나 팔려고 할 때도 그 상품에 최소 1개의 상품 유형 태그를 걸어야 하는데, 이제 사람에게도 성향 해시태그를 달아 그 사람을 더 알고자 하거나 속단하려는 알량한 몇 개의 알파벳이 얄밉다. 우리는 물같이 흐르며 변하는 존재이기에 누구도 나는 이런 사람일 것이라는 소리를 들지 않았으면 한다. 작은 호기심 게임까지 없애면 무슨 재미로 사람을 알아가고, 열 띈 대화에서 생기는 아름다운 오해(beautiful confusion)는 어디서 얻으며, 그로부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agree to disagree) 공생할 수 있을까?


누구를 팔로잉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도 소셜 미디어 시대에 생긴 새로운 공감대 형성 방법이다. 그게 기믹이든 진짜든 내 taste를 알리고 싶은 공개 소셜 플랫폼에서 누군가 나의 수준을 인정해주면 굉장히 으쓱하고 짜릿하다. 옛날엔 직접 집에 초대를 받아 대접을 받는 것부터 시작해 집 안의 집기와 소장품들을 하나 하나 소개받으며 그 사람의 생활 수준과 미적 감각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럴 것 없이 프로필 Bio를 체크하고 셀프 큐레이팅된 피드를 구경하고, 그리고 팔로잉 리스트를 보는 것으로 이 사람의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구글, 메타, 틱톡, 등의 회사가 유저의 정보를 가지고 광고 사업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유저의 선호에 따른 맞춤 광고까지 가능해지니, 폐쇄된 정보를 가지고 점점 고도화된 유저 세그맨팅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내가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무언가를 검색했지만, 내가 무방비 상황일 때 비슷한 상품이 광고로 노출되었을 때, 내가 당했다고 생각했다. 목적에 충실한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제안하고 노출하고 설득하려 할 것이다.


추천 알고리즘 코드에서 인간 인플루언서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공인의 전문가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그리고 인플루언서, 그리고 우리 바로 옆에 있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을 현실에서 만나고 있다. 인간적인 리스크까지 제거한 가상 인플루언서들의 시대는 우리 코 앞까지 왔다.


팔로우십(followship)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팔로우하는 것들로부터 무엇을 영향받고자 하는가? 그 특정 인플루언서(influencer)에게 나는 무엇이 인플루언스드(influenced)되는가? 한 번씩 스스로 질문해보며 팔로우십 디톡스(detox)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18년 LG gram의 미국 마켓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면서 이 거대한 산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봇(bot) 없이 얼마나 질 좋은 팔로워들이 있는지에 따라 부르는 게 값이다. 달러($) 보다 비싼 화폐가 관심(interest)이다. 소비자를 기만하지 못하게 광고 표시법이 생겼다 하더라도 팔로워들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내가 그 사람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고 해서 내 결정의 주도권도 같이 넘겨주어선 안된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영향받고자 하는 것부터 내가 결정하도록 해보자. 그것이 조금이라도 건강한 팔로우십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좋은 것이라고 내 입으로 정답을 떠먹여 주려는 그 호의 아닌 호의를 당당히 거절하자.


미국 코미디언이자 철학자 Dave Chappelle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Age of Spin’ 시대에 살고 있다고 했다(‘The age where nobody knows what the f*** they’re even looking at’). 핸드폰만 키면 미디어가 세상의 모든 관심사와 이슈를 떠 먹여준다. 그래서 우리가 미디어에서 보는 모든 극단적인 것들이 평균이고 이상적인 것인 것으로 믿게 만든다. 우리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고 있는 팔로우십이 그것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된다.


정답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사회가 우려스럽다. 마치 좋거나 나쁜 습관들이기처럼 무엇이든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들은 은근하다. 누구에게든 물어보면 내가 의견을 달라고 한 거지, 답을 달라는 게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한가? 우리의 행동이 이미 답을 가르쳐 달라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져가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원하는 답을 내려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종교도 그렇다, 결국 모든 것은 나만의 답을 찾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essay by 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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