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운영 관리를 위한 지표
2020년 코로나19의 등장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패러다임은 공간(空間) 일 것이다. 사이버 세계만 무궁무진할 줄 알았는데, 기술의 접목으로 물리적 공간 기획의 확장 가능성 또한 매우 넓은 것 같다. 공간에 대한 선호도는 개인별로 천지차이고, 우리가 유년기부터 어떤 주거 형태에서 자랐으며 여러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모여 미래의 공간 선호/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수많은 방법으로 공간을 정의할 수 있지만, ‘물질이 존재하고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라는 특성을 중심으로 오늘 글을 전개해보려 한다. 공간에 대한 주제는 너무나 넓기 때문에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공간들에 한해 이야기한다.
공간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무언가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헬스장이든 스타벅스든, 한 공간이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옷을 다 갖춰 입은 공간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헬스장이나 학원에서는 생산 활동이 발견된다. 스타벅스나 자라(Zara) 매장에서는 소비가 이루어진다. 은반지 제작소나 DIY 공방과 같은 곳에선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더 깊게 들어다 보면 생산과 소비를 통해 장편적 경험을 만들어 가는데, 이 경험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톡 쏘는 경험, 집처럼 편안한 경험, 가슴 뭉클한 경험, 더 나은 사람이 된 경험 등이 그러하다.
공간적 경험이란 것은 이용자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얻고자 하느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반드시 느끼게 될 sensation은 궁극적으로 experience가 된다. A에서 Z까지의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그 공간 안에서 시간을 보낸 후, 대다수가 느낀 점 중 가장 많이 중첩되는 감성이 곧 그 공간의 브랜드이자 아이덴티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은 공장같이 한 가지의 경험만을 찍어내듯 제공할 수 없다. 그래서 콘크리트로 지어진 물리적인 골격을 가진 공간일지라도 유기적인 특성을 갖는다. 공간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공간의 소비자들에 따라 변하고 공간의 현장 관리자에 따라 변한다. 이 변화는 공간 소비자와 관리자 사이의 매우 상호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공간이 경험을 제시하고 그것을 소비하기로 결정한 사람들끼리의 경험 거래의 장이다.
그러니까 완전한 상태의 공간이란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다. 주인이 내놓은 빵을 가로채듯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손님을 보고 드는 생각과 주인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몇 스푼 깨작하고 그대로 남기는 것과의 간극처럼 말이다. 특히나 영리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은 이용자를 사랑해야 하지만 그들을 절대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때로 욕을 하고 창피를 주지만 유명세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루엔 사랑을 외쳐도 다음날엔 싸늘하게 식을지 모르는 게 소비자다. 이 공간 저 공간을 다니면서 공간에 관심을 주는 것 같다가도 빠르게 흥미를 거두기도 한다. 공간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미 시작 자체가 불공평한 게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잔이 넘칠 때까지 술을 따라주어야 한다.
공간 경험이 주는 아주 흥미로운 점은 공간 제공자와 공간 소비자가 모두 한 미로 안에 있다는 것이다. 공간이 존재하는 한 그 미로는 영영 존재할 것이다. 미로 안 소비자의 옷자락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헤매는 과정을 탐구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공유 오피스라는 특수하게 설정이 된 공간을 관리하면서 느낀 것은, 다양한 metric을 통해서만 성공을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대답 외엔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를 포함해 소비자는 굉장히 기만적이기 때문이다. 설명하자면 소비자들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스스로 왜곡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나한테도 누군가 와서 이 공간에 대해 물어보면 난 이렇게 답할 것이다. “좋아요, 왜냐고요? 그냥요.”
앱/웹을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들이 많이 나오면서 UX 나 UI라는 용어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상품에 방문한 사람들이 어떻게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에 대한 고민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올리브영이나 스타필드 공간 MD, 혹은 개인 카페 사장님과 같은 공간 기획자들이 UI, UX를 말하지 않는다. 이들에겐 대면 고객, 즉 customer라는 관점이 더 와 닿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Customer Experience, CX에 대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다양한 카테고리의 소비재를 판매하는 리테일 업장들이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정확한 데이터 분석 도구는 소위 말하는 POS기다. 거래 날짜부터 시간, 주문 내역, 결제 담당자까지 나오는 이 시스템은 업장의 퍼포먼스를 그대로 보여준다. 2014년 대전에서 파티 기획 사업을 할 때 공동창업자가 관리하는 바를 하루하루 마감칠 때(?)마다 포스기의 일별 매출을 확인하는 행동이 그런 것이다. 피크시간, 테이블당 평균 주문 단가 등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만큼 정확한 고객 active data는 없다.
단순하게 장사가 잘 되고 있는지만 확인하기 위해서만 쓰인다면 이러한 숫자 정보는 신기루가 될 수가 있다. 위에서 말했듯, 많은 고객들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고객들의 불만이 없다고 장사가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성장하는 매출 속에서도 리스크를 포착해 고민한다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업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의 목적과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 공간을 저관여 공간과 고관여 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보통 제품을 구분할 때 사용되는데, 저관여 제품의 특징은 저렴한 가격으로 대체/보완재 옵션이 많은 점, 그리고 구매 결정에 큰 노력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공간도 비슷한 척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간 방문에 드는 가격과 이와 비슷한 공간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 또 있는지, 그래서 결국 그 특정 공간을 방문할지 말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지. 숙박시설에선 버짓 호텔이나 모텔을 저관여 숙박시설로 놓을 수 있겠고 아난티, 인터콘티넨탈 등 3~5성급 호텔은 매우 고관여 숙박시설이라 생각할 수 있다. 빽다방은 저관여 카페, 스타벅스나 블루보틀은 그에 비해 고관여 카페일 것이고 유니클로나 H&M, Zara 같은 SPA 매장은 비교적 저관여, 랄프로렌 퍼플 라벨, 비스포크 정장 샵 등은 고관여 샵에 속하겠다.
가격이 착하지 않다면 우린 맘먹고 가야 한다. 혹은 공간이 주는 감성이 너무 독특하다면 매일 갈만한 곳은 아닐 것이기에 고관여 범주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또 반대로 그 공간과 깊은 호감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 사람에겐 저관여 공간이 된다. 유일무이한 것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저관여 공간이 될 수 있다.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빵을 굽는다면 많은 생각 없이 방문할 것이기에 저관여 공간이라 인식할 것이다. 이렇듯 자신이 기획하고 운영하는 물리적 공간이 어떤 것을 제공하는지에 따라 알맞게 2차원, 3차원으로 포지셔닝하여 브랜딩 해야 한다.
공간 운영이라는 여정에는 한 개 이상의 이정표가 반드시 필요하다. 종착지는 높은 고객 경험을 유지하고 새로운 고객을 발견하는 것일 텐데, 이를 고안하고 측정하는 일에 도움을 줄 지표들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이 지표들의 출처는 KPMG 싱가포르에서 발간한 <Customer Experience Excellence Report 2019> 다. 전 세계 84,000 명 이상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아래 6개의 지표를 바탕으로 글로벌 브랜드들을 평가한 보고서다. 인터넷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2개씩 나뉘어 소개한다.
공간이 얼마나 고객을 위해 일관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이 지향하는 바와 그 공간을 채운 것들이 얼마나 조화로운지도 여기에 포함된다. 공간 경험 시작점에 있기 때문에 초기 공간 기획 단계를 넘어 계속해서 체크해야 할 지표다.
공간이 고객들에게 얼마나 더 감동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모든 역량이다. 이 지표 설정은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수 있는 편안한 쉼 공간” 이 될 수도 있고 “최소 2개의 제품을 추천한다” 혹은 “방문 감사인사 후 중간에 모든 것이 괜찮은지 중간 인사 한 번 후 나갈 때 칭찬 인사를 한다”처럼 구체적일 수도 있다. 모든 방문객들은 자신만의 기대치를 정하고 공간을 경험(소비) 하기 때문에 이 기대치를 공간이 먼저 기준을 만들 수 있다.
위 두 개의 지표를 통해 공간의 브랜드와 아이덴티티, 호감도 등을 측정할 수 있다. 위 두 지표의 중요한 요건은 얼마나 일관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다.
아래의 두 지표는 운영 측면의 지표가 될 수 있다.
공간이 제공하는 서비스 혹은 제품의 제공 시간 및 노력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다. 크루아상 하나를 덥혀달라고 했는데 10분이 걸린다거나, 컨시어지에 요청한 새 와인잔 2개를 올려주는데 30분 이상이 걸린다면 그때부터 고객의 입꼬리가 내려간다. 이와 동시에 제공하는 서비스 및 제품의 질, 경험이 전달되는 일련의 모든 단계도 포함된다.
이 지표는 조금 까다롭지만 브랜드 하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간 내에서 이슈가 발생하거나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상황을 역전시키는지에 대한 역량이다. 여러 우발적 상황에 대한 직원 프로토콜을 마련하거나 책임자를 대상으로 창의적 해결 방법 워크숍, 오너십 부여 등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 두 개의 지표는 조금 더 비정형적이고 무형적인 가치 창출을 위한 지표다. 일명 단골 만들기 전략이다. 아래의 두 지표는 사실 정량화하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고객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 고객의 높은 브랜드 헌신도를 얻을 수 있다.
고객과의 대면 관계에서 어떻게 개인적 터치를 해줄 수 있는가를 측정한다. 얼마나 고객별 특수한 요청을 수용할 수 있는가? 고객들의 변화하는 행동에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새롭게 적응할 수 있는가도 포함된다.
얼마나 공감력을 가지고 고객을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지표다. 이는 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에서 중시할 도구가 될 수 있겠지만, 그만큼 가장 어려운 일이다. 우리 모두 한 번씩 경험해봤을, “이렇게까지 절 위해서 해주시다뇨...ㅠㅠ“ 와 같은 경험이다.
공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나의 대답은 이렇게 정했다: 공간은 방문해주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것.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대화를 통해 고객을 알아가는 긴 과정이다. 소비자가 물리적 공간에 발을 들이면서 대화는 시작되고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좋은 공간이란 그런 것 같다.
마지막으로, 뭇사람들이 공간 사업을 준비하면서 이쁜 면만 보고 공간 기획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가까운 지인의 카페, 바버샵, 주점, 눈썹 관리샵 운영 모습을 보면 그들의 공간 운영 전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아무리 개인 소유라 하더라도 공간을 자기 자아와 동일시하면 위험하다. 그래서 위 6개의 지표가 이런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발 길이 끊기는 것은 그 공간에 대한 시한부 선고와 같다. 계속해서 고객들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또 민첩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가 공간 생존의 관건일 것이다.
essay by junwoo
photo by Michael Dziedz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