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리더들에게 보내는 헌사
인간 역사에서 훌륭한 지도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더십을 통해 가장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임진왜란의 전세를 반전시킨 중심인물 중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왜란 중에 그가 쓴 일기를 봐도 그의 치열한 내면적 갈등이 잘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직의 명운이 걸린 상황일수록 리더는 더 고독해지는 것 같다.
지금의 회사가 좋은 바람을 만나 순항중이든, 혹은 큰 파도들을 만나 이리저리 기우뚱하든, 조직원들은 리더로부터 방향 지시와 최종 결정을 기다린다. 보통 위기 상황일수록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모습을 상상한다. 권위적일 만큼 본인의 목표를 관철하고, 압도적인 경력과 경험을 도구 삼아 부하들을 휘어잡고, 빠르게 조직 내 정보를 공유하거나 기동성을 확보하는 리더십이다.
보통의 상황에서의 조직들은 기존 영업을 강화하거나 효율화할 것이며, 기존 지표를 검증하고 테스트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운영 전략이 잘 먹히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강한 모티브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려울수록 임원 소집이 잦아지고 운영에 필수적인 예산만 책정된다. 이런 변화를 보고만 있는 직원들은 이제 자신의 직속상관에게로 눈을 돌린다. 그는 과연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만약 그 말이 해풍에 바짝 말린 명태보다 건조하다면 우린 ‘음.. 그래..’ 정도로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더 이상 그의 지도력은 우리 마음속에 공명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의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어떻게 팀원들을 안심시키고 변화된 환경을 함께 적응해나갈지 평등한 분위기 조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맥킨지 앤 컴퍼니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팬대믹 상황에서 조직원들은 인간적인 리더십 스타일을 원한다고 한다. 인간적인 리더십에 대한 내용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리더는 결이 약간 다르다. 나는 행복한 사람, 행복한 리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행복과 리더라니, 두 단어가 모순돼 보인다. 리더란 심각해할 줄도 알고 본인의 감정을 잘 노출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 아니었나. 행복한 리더라니, 물렁물렁할 것 같고 쉽게 상처 받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섬긴 행복한 리더들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몸의 움직임은 유연했고 눈빛의 초점은 사나운 맹수의 그것보다 뚜렷했다.
혹시 행복한 리더를 만난 적이 있는가? 조금 행복한 사람도 있고 적당히 행복한 사람도 봐 왔지만 본인 스스로 ‘나는 행복하다’고 매우 자주 말하는 리더와 일해본 것은 굉장한 경험이다. 최근 만난 나의 팀장님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지점 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그는 우리에게 자기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새 업무 분장이나 현안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의 행복 선언(?)이 우선했다. 그의 나이나 업무 경력 등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행복 선언 이후 우리는 그에 대해 알 준비가 됐고, 그분도 우리에게 행복을 전파할 준비가 되었다. 이는 자연스레 우리 팀의 밝은 분위기와 유연한 커뮤니케이션을 세팅했다.
내가 봐온 모든 행복한 리더들이 가진 특징이 하나 있는데, 지금 본인의 자리(status)에 매우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본인에게 주어진 책임감과 업무를 만족스럽게 맡는다는 것은 요즘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책임져야 하는 조직원들에게 관심이 없는 리더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왔는가.
그래서 행복한 리더들은 팀원 관리 목적을 넘어 팀원 개개인에게 진짜로 관심을 갖는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고 팀원들의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된 것에 기뻐한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팀원들도 직장에서 더 자연스럽게, 자기답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자신감과 위기 대처 능력을 높여줄 것이다.
또한 행복한 리더들은 심리적으로 안정적이다. 본인의 마음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게 높은데, Emotional Intelligence라고도 불리는 정서지능은 이미 실리콘벨리 리더들로부터 중요성이 검증되었다. 이 능력이 최대로 발현되는 때가 바로 아주 까다롭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일 것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체적인 결정 앞에 어느 정도의 부담감과 공포를 갖는다. 일이 잘 못 되면 어떡하지? 내 결정이 결국 나의 능력을 대변할 텐데, 일이 잘 못 된다면 나의 reputation은?
내가 본 행복한 리더는 팀의 주요한 결정을 내릴 때일수록 침착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문제 때문에 내 행복이 침해되면 안 된다는 듯, 문제를 크게 키우지 않고 개인적 경험과 업무 경력을 활용해 멋진 결정을 내려주었다. 문제 자체에 사로잡히면 다양한 정보를 고려할 시야가 사라진다. 단편적인 시야로는 온전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이렇게 행복한 리더들은 자기 위치에서 조용히 그들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의 영향력은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큰 파급력을 가지며, (-)를 (+)로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을 만든다. 행복한 리더들은 시끄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조용한 힘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불안한 사람이 자기의 조그만 성과나 실적을 알리고 싶어 하는 법이다. 행복한 리더들은 애초에 그러한 부분에 큰 욕심이 없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공부했거나 난중일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과도 얼마나 사사롭게 어울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쁜 일이 생기면 부하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나눴고, 슬픈 일이 생기면 병사들 앞에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아주 용기 있는 인간적인 리더였다. 물론 화살이 빗발치는 전시 상황에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겠지만, 만약 내가 그때 이순신 장군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졸개였다면 강직한 군인의 모습보다 공감대가 넓은, 기쁠 때 기뻐하는 리더의 면모에 매료돼 그에게 충성하지 않았을까?
essay by junwoo
photo by Justin Heap, Leo Menga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