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격 수양의 필요성
세상에 수많은 기업들이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다. 인간처럼 기업에도 생의 주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긴 것 외엔 우리 삶 바로 옆에서 파란만장하고 유구한 역사를 만들고 있다. 몇 세기 동안 세상을 호령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짧지만 강력한 족적을 남기고 해산한 회사들도 보인다. 그래서 기업은 세상에 등장해 인간과 비슷하게 피 끓는 사춘기를 여러 번 겪으며 인격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겪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굳이 구분해보자면 자연인(自然人)과 법인(法人)이라는 큰 범주로 나눠볼 수 있는데, 두 한자어에 모두 사람인이 들어간다. 법인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결합한 사람의 단체(社團), 혹은 일정한 목적에 바쳐진 재산(財團)을 칭한다(출처: 네이버 조세 통람). 자연인과 조금 다른 법의 테두리 안에 있을 뿐 부여된 권리인 사회/경제 활동을 한다는 점은 같다.
많이 먹고 빨리 크는 게 다 좋은 건 아니다
기업은 돈 벌 준비가 된 포켓몬이 창업자의 포켓볼에서 툭 하고 나오는 게 아니다. 창립자의 아이디어가 자아를 갖고 신체(경제) 활동을 하려면 인격을 갖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폭풍 성장’은 좋아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쉽게 밥 먹여주는 기업이 있고 1년 내내 보릿고개를 넘는 기업도 있지만 두 기업의 성장하는 과정이 다른 것이다. 사람과 비슷하게 각자의 전성기(prime time)가 오는 때가 다르다. 몸과 마음이 그 기회를 포착할 준비가 되었는지가 관건이니까. 신체적 성장을 위한 영양분만큼 인격 성장을 위한 훈련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많은 스타트업이 배고파 죽기보다 (투자금을) 소화하지 못해 죽는다는 말이 있을까. 뭐든지 갑작스러운 변화는 그 흔적을 세게 남긴다. 기업의 벨류 체인이 갖춰지고 내부 신진대사가 잘 된다고 해서 성숙한 인격을 가진 기업이라 말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기업의 몸집은 커졌지만 아직 건강한 조직 문화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어른이’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모든 기업이 가진 소명이지만 그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행동에서 그 기업의 인격과 민낯이 드러난다.
말로만? 행동으로 보여줘
기업이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언어적 소통과 비언어적 소통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면, 소셜 네트워크나 홈페이지, 실제 업장 등 모든 고객과의 물리적, 가상의 접점에서 소비자가 읽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언어적 소통이라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이 내용을 바탕으로 기업의 첫인상을 처리한다. 소비자들은 똑똑하기 때문에 호감 있게 모습을 가공할 줄 아는 것도 기업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판매하는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제공) 과정이 비언어적 소통을 담당한다. 한 공유오피스 브랜드가 고객들에게 유연하고 편리한 사무실 옵션을 제공한다고 홍보했는데 막상 입주하고 보니 사무실 내 냉방이전혀 안되거나 문 잠금 장치가 고장났다면 그것은 마케팅이라는 언어적 소통과 낮은 완성도의 제품이 보여준 행동 불일치다.
다른 예로, 자기 회사는 친환경 생리대를 만든다고 홍보해놓고 택배 포장지는 100년이 지나도 분해가 안 되는 비닐 뽁뽁이를 잔뜩 넣어 보내주는 것이다. 제품 생산을 넘어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행위까지 소비자들은 기업 인격의 연장선으로 본다. 작은 센스 하나가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듯 점점 많은 기업들이 제품 포장 박스 처리에도 공을 들이는 이유다. 마켓컬리는 신선식품 새벽 배송이란 강력한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지만 소비자들은 이 기업의 인격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필요한 보냉재 등의 투머치 비닐 내장재가 이슈였는데, 이에 대해 마켓컬리는 모든 내장지를 종이 재질로 바꾸고 종이 박스 회수 서비스도 진행하며 배송 활동에 수준 높은 인격을 보이고 있다.
해당 기업이 해결하려는 사회적 문제에 깊이 공감하는 소비자가 많을수록 높은 호감도와 충성심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잘 만들어진 제품 하나가 잊혀가는 브랜드의 평판을 단숨에 반전시키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기업의 언행 불일치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 소비자는 영영 작별을 고할 것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에게 큰 신뢰를 갖듯, 기업이 공언한 대로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소비자들은 충성심을 보여준다.
인기 있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우리 주변에도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가 그렇다면 어이구 하면서 충고를 해줄 수 있지만 기업에겐 소비자에게 훈계받을 기회가 많지 않다. 주변에 자기 관리에 엄격한 지인들이 한 둘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은 실수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나태함이나 실수, 무례함을 스스로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평판이 좋은 것이다. 소비자들도 기업이 실수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 실수를 만든 사건을 어떻게 정의하고 동일한 사건을 만들지 않는지 유심히 보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실수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태도는 그 기업의 수준 높은 인격을 형성할 것이다.
인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잘 분석해 브랜딩 할 줄 안다. 적절히 수다스러울 줄 알며 신비감을 조성할 줄 안다. 그래서 그들의 sns 채널은 항상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고 다음 포스트가 궁금해지게 만든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대화에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한 번은 등장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는 매년 산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브랜드 평판지수 어워드를 발표한다. 산업 카테고리별 측정 기준은 상이하지만 보통 소비자들이 그 브랜드를 얼마나 언급했는지, 그리고 그 언급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이었는지, 또 그 브랜드의 접근성을 토대로 평가한다. 여기 들어가면 카테고리별 브랜드 평판 어워즈를 수상한 기업들을 볼 수 있다. 동종업계 경쟁사와의 상대적 위치이니 거시적으로 참고할만하다.
위에서 말한 언어 / 비언어적 소통 방법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수준 높은 인격체를 추구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웃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위기 때 드러나는 인격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조직이 스스로 일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위기 대처에서 빛을 발한다. 예전에 9급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자신의 시험 답안을 고치러 구청 사무실의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간 사건이 있었다. 그 조직의 업무 보안 인식 수준이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이는 그 조직이 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행하는지 단면적으로 알 수 있는 사례다. 이는 낮은 인격이다. 높은 인격을 가진 조직만이 실수 인정도 빠르고 책임감 있게 이를 만회할 수 있다.
기업은 어떻게 인격 수양을 해야 하는가
기업이 인격 수양을 한답시고 머리를 깎고 티베트로 갈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기업도 나름대로 덕을 기를 수 있다. 기업이 할 수 있는 많은 인격 수양 덕목 중 하나로 나는 <태연자약>을 꼽고 싶다. 풀이하면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내면이 단단하여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면이 단단하면 완성도 있는 결정을 민첩하게 이룰 수 있다. 기업의 단단한 인격은 조직원들이 한 인격체의 구성원으로서 공통의 동기와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상향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이 반복될수록 건강한 조직 문화가 자리 잡을 확률이 높아진다. 경영자의 시선이 높을수록 조직원을 비롯한 기업 자체가 수준 있는 인격을 고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시간은 변화의 척도이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이 자연스레 인격을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나 기업이나 스스로 수양하지 않으면 급변하는 주변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 높은 인격과 기업의 성공은 서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분명 연관이 있다. 우리 소비자들은 인품이 느껴지는 기업에 더 호감을 가진다. 따라서 대다수의 소비자에게 인격체로서의 인정을 받은 기업들은 다른 기업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ssay by junwoo
photo by Solen Feyissa, Dan Crist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