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크루아상
올해는 특히나 휴가철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신종 코로나 감염이 걱정스러워 놀러 가기가 쉽게 내키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거리를 두어야 하다 보니 상권도 예전 같지 않다. 무엇이든 마음과 같지 않은 2020년이다.
동시에 내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올해 아버지 환갑을 맞이해 가족여행으로 가기로 했던 파리행 항공편을 취소해야 했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을 기점으로 약 2주 정도 파리를 여행하기로 결정해 작년에 대한항공편으로 예매해두었던 티켓이었다. 파리를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전적으로 나의 엄마를 위함이었다. 우리 엄마는 파리를 오랫동안 동경해왔다. 언제부턴가 대전집에 내려가면 듣지도 보지도 못 한 잼에 특이한 속(stuffing)을 넣은 크루아상을 아침으로 주셨다. 보기엔 이상해도 특이하게 맛이 조화로워서 매번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난 맛있어 보이는 크루아상만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아무튼, 한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대적으로 창궐하기 시작한 4월부터 대전에 계신 아빠와 파리 여행에 대해 논의해왔다. 회사가 다국적 회사다 보니 그 당시 최대한의 예방 조치를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올해 상황이 길어질 것으로 봤다. 그래서 아빠에게 올해 여행은 글렀다고 말씀드렸다. 통화는 아빠와 하고 있었지만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실망과 아쉬움이 들리는 듯했다. 분명 아쉬우셨으리라.
이렇게 (거의 20년 만의)네 가족 해외여행은 무산되었지만, 부모님은 아들 둘이 먼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1년에 한 번쯤은 네 가족이 모여 여행을 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아들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평소였다면, 혹은 예전이었다면 여행지 결정은 이미 아빠가 결정하여 우리는 그냥 몸만 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부터는 조금 달랐다. 마치 장남인 나에게 주도권이 넘어왔다는 느낌? 이 주도권이 마냥 좋지만은 않고 꽤나 부담이 된다는 느낌? 아무튼 내가 며칠 고심 끝에 정한 여행지는 남해였다. 그것도 남해에 있는 좋은 리조트 호텔이었다. 내가 Flex를 한 이유는 먼저 계획한 해외여행이 취소되면서 여행 목적의 여유 자금이 생겼기도 했고, 더 중요한 이유는 돈 버는 큰 아들이 내는 첫 가족 여행이기 때문이었다. 예약한 호텔 이름을 부모님께 알려드리니 거기 들어봤다고 하시며 설레어하시며 준비하시는 모습은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이번 2박 3일 여행은 전 날 밤 아들들이 대전에 내려가 다음 날 같이 출발하는 계획이었다. 대전에서 남해는 약 3시간 거리에 있다. 이전에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 여행길에서는 이상하게 우리가 타고 다닌 아빠의 그랜드 카니발이 걱정이 됐다. 장거리 주행이라 갑자기 엔진이 이상을 보일 것 같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걱정이 들었다. 기계공학과 출신이신 우리 아빠는 본인의 차를 정말 잘 관리하셨다. 그래도 나는 10년이 넘은 이 차를 빨리 바꿔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이번 여행에서 처음 하게 됐다. 이번에 신형 그랜드 카니발이 아주 잘 나왔던데. 아직은 무리다.. 아직은.
내가 백만 원이 넘는 호텔 숙박비를 내고, 운전을 하고, 이것저것 사 드리면서 느낀 것이 많다. 오랜만에 엄마가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 우리 엄마는 물을 무서워하는데 꼭 수영하고 싶어 하시는 모습. 아빠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돈을 잘 썼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돈을 써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중간중간 일부러 더 욕심을 냈다. "아이고 됐어~" 굳이 시키지 말라는 레드 와인 한 병을 주문하니 아주 맛이 좋다고 잔을 모두 비운 엄마, 나 취하면 방까지 부축해달라고 엄살 부리는 아빠, 나도 이제 이 분들 눈에서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아빠는 지금 내 나이에 결혼을 했다.
앞으로 이제 나는 나의 부모를 위한 여행을 계속 준비할 것이다. 오직 두 분을 위함이다. 자식이 해야 하는 감사와 존경의 표현이다. 또한 우리 자식들의 훈련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부모님 두 분끼리 즐겁게 지내셔야 하고 나는 동생과 우애 있게 지내야 한다. 다음 여행 때부턴 내 어깨에 들어간 힘도 빠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1년에 한두 번 다 같이 만나 두 분을 위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여행지에서만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충실히 사용하였다. 오며 가며 부모님 세대에서 히트했던 노래들을 선곡하며 부모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 나눈 동생에게 고맙다. 외부 상황이 위기일수록 가족은 평안한 피난처이다.
첫 여행에서 부모님의 눈높이를 상당히 올려놓아 다행이다. 이제 아들들과의 여행을 가장 즐겁고 편안한 여행으로 기대하실 것이다. 몽마르뜨 아래에서 엄마에게 따끈한 크루아상을 사드릴 날이 곧 오기를. 그동안 엄마 아빠가 웃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야지.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junwoo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