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는 곳에 대하여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주요 고민거리는 왜 이 제품이 잘 안 팔릴까 보다 어떤 직원이 말썽인지, 어떤 직원이 일 배우는 속도가 느리다든지 등의 인력 관리에 있다. 인력 관리의 어려움은 사람을 고용한 시점부터 계속된다. 어떻게 채용할 것인지, 어떻게 업무를 교육할 것인지, 어떻게 상벌 규정을 만들 것인지, 어떻게 인센티브를 계획할 것인지 등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특히 잘하던 에이스 직원이 퇴사를 통보해 왔을 때의 아득함은 자영업 사장님들이라면 겪어봤을 일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오른다. 이 숫자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얼굴을 동시에 비춘다. 시급 1만 원을 해내려는 노동계와 지불 여력이 없다는 소상공인들과 중소기업 경영자들. 이건 각 이해 집단의 이기심일까? 단순히 장부상 대차대조표가 바뀌는 수준이 아니다. 제품 가격 경쟁력과 인력 보유에 대한 크나큰 리스크이고, 이미 달리고 있는 언덕을 조금 더 가파르게 만드는 일이다. 근로 노동자 입장에선 매월 통장에 꽂히는 액수가 늘어나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기업 경영자의 고충을 헤아려보면 이 시대의 업(work)에 대해, 인력 관리에 대한 그들의 생각에 대해, 나아가 좋은 리더십이 무엇인지 이해해볼 수 있다. 노동시장엔 항상 양면성이 있다.
플랫폼 노동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수를 얻는 사람들을 말한다. 두산 백과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이란, ‘디지털 플랫폼의 중개를 통하여 일자리를 구하고, 단속적(1회성, 비상시적, 비정기적) 일거리 1건당 일정한 보수를 받고,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하며 근로소득을 획득하는 근로형태'라고 정의하였다(한국 고용정보원). 플랫폼 노동도 1) 온디멘드 노동과 2)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노동으로 나뉘는데, 플랫폼에서 수요자의 주문이 바로 공급자에게 할당되는 형식이거나(예/배달 대행) 주문에 대해 서비스 공급자들이 비딩을 하는 형식이다(예/크몽, 재능기부). 플랫폼 노동은 근로계약관계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종속 노동과 달리 고용의 비전속성(업무상 주로 하나의 사업체에 속한 정도가 낮음), 업무 또는 서비스의 초단기성, 업무 장소 및 시기의 불특정성, 업무(서비스) 선택의 자율성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말해 일이 있을 때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다. 일을 하는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노동자 본인이 가진다는 것, 그래서 투잡 옵션이 많아진 것은 일하는 것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에 있어 큰 이정표(milestone)다.
이번 팬데믹으로 촉발되어 가속화된 비대면 플랫폼 거래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몇 배달 대행업자들은 올해 배달 건수 목표를 이미 상반기에 달성했다고 한다. 배달 기사들의 고소득 인증글들이 인터넷에서 회자된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본인 급여의 액수를 플랫폼 노동자들의 소득과 비교하는 웃픈 상황이 펼쳐진다.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은 미국은 강력한 재난 지원금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에 논의되고 있는 4차 재난지원금은 연 소득이 75,000 달러 이하, 가구 연소득이 112,500 달러 이하의 가장, 그리고 합산 연소득이 150,000 달러 이하인 부부에게 올해까지 달마다 2,000 달러를 준다. 미국 연방 차원에서 지원금 정책을 집행하면서 주정부에서도 따로 필요시에 재난지원금을 주고 있다. 이렇게 급진적인 현금 지원 정책(relief package)은 사람들의 일할 의욕을 없앨 수 있다. 특히 unskilled workers, 단순 노동직군의 인력난이 심화된다. 백수 월급으로도 살만한 현실에, 맥도날드와 같은 프랜차이즈들은 면접에 오기만 해도 50달러씩 준다. 사람이 안 뽑히는 원인을 정부의 탓으로 돌려야 하는 고용주들의 위기인 것이다. 경제가 나아지면서 수요가 늘면 공급도 자연스레 늘어야 총효용이 증가하는데, 정작 일을 해줄 사람이 없으니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플랫폼 공룡들의 개발자 영입 경쟁을 보면서 나 같은 문돌이(?)와 예체능 직군들은 현타 아닌 현타를 느꼈다. 비슷한 현상을 단순직 채용 과정에서도 보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할까.
FIRE족이 한때 유행처럼 회자되었다. 빨리 벌고 빨리 은퇴하고 싶은 사람들은 왜 생긴 것일까? 일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일을 안 하고 싶다는게 아니라, 내 신체와 지능이 최상의 수준일때 한창 벌겠다는 것이다. 돈 되는 일을 한 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젊을 때 사서 고생하여 개처럼 벌겠다는 의미인가?
한국 베이비붐 세대에게 회사란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안식처이자 충성의 대상이었다. ‘임직원 가족’이라는 단어가 흔하게 쓰이며 사훈을 임직원들의 존재 목적인듯 교육했다. 회사 오너의 철학이 직원들에게 자연스레 내재화되는 조직 분위기 속에서 회사 생활을 해왔다. 이 시대엔 회사 성공의 척도가 번듯한 사옥을 가지는 것이었다. 역에서 먼 이면도로 안쪽에 있던 허름한 건물에서 시작했다가 부지를 사서 멋진 건물을 올리는 자신의 모습이 오너들의 청사진에 있었다. 그렇다 보니 회사 사무실이 있는 빌딩의 컨디션에 따라 회사의 잘 나감 여부를 파악하기가 간단했다. 회사의 신용이 든든하냐, 현금이 충분히 있냐에 따라 좋은 건물에 임차인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래서 상업용 부동산의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는 더욱 철저히 갑-을 관계로 움직였다. 영세한 회사가 삐까번쩍한 건물에 사무실을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임대인 - 임차인 사이의 관계에서 전대인이 등장하였다. 턴키(turn-key) 방식에 초기 셋업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서비스드 오피스(serviced office)를 가치로 제공하는 공유오피스 브랜드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중소기업(SMB), 1인 사업자(self-employed), 그리고 프리랜서들에게 좋은 업무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는 디지털 생태계를 중심으로 수많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스타트업 창립자들이 갖는 사무실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사무실은 곧 나의 비전에 동참해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는 도구로 중요했다. 실례로 위워크의 입주사들은 채용 정보에 ‘위워크 **점 입주’ 등으로 어필한다. 입지 좋은 곳에 있는 좋은 공간을 마다할 인재는 없고, 좋은 인재 확보가 사업 초기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을 공유오피스가 해결해주었다. 공유 오피스 사업자들은 전통적인 임대인(건물주)들의 힘을 약화시켰고, 개인이 갖는 일에 대한 가치에 귀를 기울였다. 일반적으로 혁신이라 함은 수지 타산이 맞냐라는 논제 이전에 ‘WHY’라는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계유지의 수단을 넘어 일 자체의 경험에 변화를 일으킨다. 좋은 공간은 사람을 향하기 때문에 좋은 공간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용자들을 배려하는 것이고 이는 곧 인권과 직접적으로 관계된다. 선진국일수록 수준 높은 공공건축물과 도심 내 공원 등의 공공 인프라가 많은 것과 같다.
점점 많은 유능한 직원들이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비전 하나만 가지고 스타트업에 조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주도성과 회사가 성장하면서 느끼는 다이나믹함, 그리고 성과가 비교적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스스로 성취감을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이라 말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이제 회사의 네임 벨류와 배 따뜻한 복지에서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자아실현과 그 일련의 모든 경험에 매우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보다 나의 성장이 중요한, ‘나’가 본격적으로 중요해졌다. 단적인 예로 모베러웍스가 2030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좋은 공간은 단순히 직원들의 눈을 높인 게 아니라, 그동안 가능하다 생각하지 못했던 것(업무 환경과 일하는 방식에 대한 결정권(ownership)에 접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그래서 이러한 전대 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1인 이용자들과 소규모 회사들이다. 다만 운영자들에게 재정상 도움이 되는 고객은 기업들이다. 위워크를 포함한 공유오피스의 가장 큰 입주 비중을 차지하는 고객군은 대기업인데, 이들은 부서별 예산 수준으로 추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을 파악했고, 특히 COVID-19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사옥 출근에 대한 대안으로써의 기능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대업의 한계는 물리적인 공급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매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일하는 방식에 계속해서 혁신을 줄 수 있는 것은 공간인만큼, 공유오피스 비즈니스가 갈 수 있는 궁극적인 목적지는 업무 공간 플랫폼이다. 업무용 공간이란 큰돈을 주고 전용 공간을 빌리는 것이라는 기존의 발상을 전환시켜야 하는 큰 숙제다.
다행이라 하면, 현재의 기술과 전염병이 새로운 업무 방식과 삶의 방식을 매우 빠르게 촉발했다. 이 팬데믹을 빠르게 대비한 회사들만 살아남았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우리는 ‘이동’과 ‘사회생활’, 더 나아가 ‘직장 생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이 중요해졌고, 리더십이 생각하는 직원에 대한 가치에 따라 조직의 경쟁력과 명운이 달렸다. 인재(talent)가 결국 회사의 경쟁력을 정하는 시대다. 업계 1위 회사들의 실무자들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잘 나가는 스타트업의 C레벨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스타 개발자가 있다면 개발자들이 따라오는 시대다. 더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가고 모험과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게 지금 세대의 실무자 세대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젊은 직원들을 오래 다니게 하면서 회사를 위해 일하게 하느냐가 중요한 질문이 된 시대다. 직원 개개인의 인권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이를 어떤 기술로 풀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노력 여하에 따라 직원 퇴사율을 줄이고 입사율을 높일 수 있는 차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리더십들은 본인들의 리더십이 어떤 스타일인지 고민할 게 아니라, 요즘 직원들은 어떤 유형의 팔로우십(followship)을 갖고 일하는지를 예민하게 보아야 한다. 직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게 자신의 리더십을 희석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현직자로서 공유오피스 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이 바람도 작은 곳에서 불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재택근무, 원격 근무, 하이브리드 오피스와 같은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근무지 옵션이 생긴 것을 넘어선다. 관리자들이 어느 수준으로 기존 업무들을 디지털화하고 업무 환경을 비대면(언택트)화할 의향이 있는지에 달렸다. 하이브리드 오피스는 곧 직원들이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다. 또한 이는 더 이상 사치가 아니게 되었다. 리더들이 해야 할 일은 어떻게 직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도 각자의 KPI를 달성할 수 있게 지표를 설정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생산성을 저해할 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는 관리직군 역량 확보에 집중하는 것이다. 깨어있다는 것은 반드시 급진적일 필요가 없다. 다만 이 변화가 예고 없이 빠르게 찾아왔다.
특히 메타버스와 같은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은 궁극적으로 본사가 없어지는 시대, 풀뿌리 업무 지구를 만들 것이다. ‘아, 저희 본사는 강남에 있어요’, 혹은 ‘저희 이번에 5층짜리 사옥 지어서 이전해요’에서 ‘저희는 본사가 따로 없어요’ 하는 날이 올 것이다.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青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