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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Feb 05. 2022

미안한데, 너도 늙고 있단다

하지만 난 계속 젊을 생각이다

요샌 밤을 잘 못 새우겠다

대학생 시절엔 잠을 거의 안 잤던 것 같다. 잠을 몰아서 자도 다음날이면 평상시 컨디션으로 돌아올 정도로 회복탄력성이 높을 때였다. 다 같이 동이 틀 때까지 술을 마셔도 아침 강의에 나왔냐 못 나왔냐로 승자가 가려졌다. 내가 고독한 밤과 친해졌던 계기는 3학년 학기 중에 시작한 의류 브랜드 사업이었다. 매일 밤을 새우며 치열하게 고민한 밤들이 기억난다. 스마트한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무식하게 몸과 시간으로 때웠던 시기였다.


오늘 내 나이 만 서른, 걱정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몸의 변화를 문득문득 느낀다. 수면 사이클이 무너지면 눈이 건조해진다. 술을 마신 다음날은 두통이 오래간다. 겨울철엔 피부가 땅기는 느낌을 받는다. 체내 수분 부족? 눈 밑 다크 서클?


너는 안 늙을 것 같지?

해가 지날수록 대전 집에 내려가면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 주제가 달라진다. 넌 이제 어떻게 살 계획이니? 결혼은? 회사는 괜찮니? 나는 그 질문들에 내 나름의 답이 준비되어있다. 다만, 그 대답들이 그들이 듣고 싶은 게 아닐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점이다. 유력한 이유는, 그 계획들이 일정 수준의 모험과 고행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이 세상 사람 중 1등이다. 하지만 그분은 내가 아직도 뭐든지 쉽게 결정하는 어린애로 보시기 때문에 걱정일 것이다. 조급함은 문제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시도하고 또 시도하고 싶다고 역설한다. 그럼 엄마는 내게, “넌 안 늙을 것 같지?”


나는 늙고 있지 않다(는 착각?)

엄마의 우려 섞인 조언을 요목 조목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내가 모험을 감행하고 싶은 이유가 혹시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체보다 빠르게 노화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젊을 때 안 하면 늙어서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A를 못하면 놓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런 이유로 지금은 B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내가 늙었음을 자각할 때 드는 감정이 후회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몸은 늙지만 나는 안 늙을 수 있다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하는 나이는 얼추 정해져 있다. 그러나 젊음에서 늙음으로 가는 나이 구간은 없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내 주변에는 멋진 형, 누나들이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긍정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 외모나 옷차림에 본인만의 특징이 있다는 점, 그리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한다’는 점이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들이 미래 시점을 바라보기 때문에 흥미롭다. 현실을 반영하면서 미래에 있을 가치를 얻고자 실천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는다.


밀라논나나 김칠두 모델이 가진 의지력은 그들의 나이를 무시한다. 의지력이 그들을 늙음에서 분리시킨다. 태양에 그을린 피부색과 미소에 맞게 깊게 파인 주름이 멋지다. 눈빛이 생기를 내뿜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뇌가 신체를 속일 수 있다고 믿는다. 평생 일을 할 수 있다면, 할 것을 찾을 의지만 있다면 평생 은퇴할 필요가 없겠다.


늙음이란 림보(Limbo)

우리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머지않아 치매 증상을 보이셨다. 평생을 그분을 위해 사시다가 그 대상이 사라지니, 그간 가지셨던 긴장감과 목적의식이 사라진 듯했다. 정신을 부여잡고 있던 대상이 사라지니, 이제는 외손주들도 알아보시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를 보시고 배시시 웃기만 하시는 우리 외할머니의 젊음이 그립다.


영화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을 얘기하고 싶다. 코브(디카프리오)는 부상으로 림보에 빠진 사이토(와타나베 켄)를 찾아간다. 거기서 늙어있는 사이토(와타나베)와 대면한다. 사이토는, 함께 젊음을 보냈던 상대가 그대로 젊은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왔을 때, 자기는 죽기를 기다리는 후회로 가득 찬 늙은이라고 말한다(“I am an old man filled with regrets waiting to die alone”). 그를 림보에서 꺼내기 위해 코브는 이렇게 말한다.


“I’ve come back for you, to remind you of something you once knew… To take a leap of faith…Come back, so we can be young men together again”



essay by 이준우

photo by Corina Ra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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