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준의 모티브 62]
속도는 느리고, 자꾸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짜증나게 하고, 거기에만 매달리게 된다. 이것저것 해보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별 차이가 없다. 이렇게 지내온게 몇 달인데 더 참지를 못하겠다.
집에 있는 컴퓨터가 말썽이다. 프린트하기 위해서 용량이 큰 파일을 띄워서 작업을 하려고 하니 너무 버벅거린다. 아이와 영화라도 볼라치면 로딩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얼마전부터는 아이콘이 제멋대로 번쩍번쩍 거린다. 백신 프로그램을 돌려도 발견되는 바이러스는 없는데 속도가 너무 느리다. 결국 AS센터에 가서 문제가 뭔지 진단도 받고,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면 해보기로 했다.
담당기사분은 일단 하드웨어를 진단하고는 그 결과를 모니터를 통해 확인해주었다. 기존 부품이 고장난 것은 아니니 소프트웨어의 문제라는 것이다. 여러가지 방법을 써 볼수 있는데 자잘한 문제를 해결해봤자 성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럴때는 OS를 싹 밀어버리고 새로 설치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백업이 꼭 필요한 데이터만 알려달라고 해서, 그것만 빼고 새로 깔기로 했다. 그간 윈도우 버전도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으니 최신 버전으로 설치해 주겠단다.
메모리가 작으면 작업을 처리하는 데 문제가 있을수 있으니 기존의 2배 정도 용량의 메모리를 추가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기다림의 시간. 1시간 20분 정도가 지나 작업은 끝났다. 기사님은 한 동안은 문제없을 것이라는 덕담과 함께 본체를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 돌려주셨다.
집에 와서 전원과 주변기기를 연결해보니 컴퓨터가 쌩쌩돌아간다. 전에는 인터넷이 기어서 넘어 갔다면, 이제는 다음 페이지로 200미터 달리기하듯 팍팍 넘어간다. 앞으로 이 컴퓨터에는 꼭 필요한 프로그램만 깔아서 써야겠다. 아이와 아내에게도 그렇게 하자고 당부를 했다.
컴퓨터 정리를 마치고 차 한 잔을 마시는데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면서도 인생의 속도가 나지 않고, 문제가 자꾸 생기고 짜증이 난다면 해결하는 방법은 비슷하겠구나.
1. 문제가 무엇인지 모를 때는 전문가를 찾아간다. 잘 모르는 문제를 가지고 끙끙대 봤자, 문제만 더 복잡해지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아프면 치과 가고, 배 아프면 내과 가는것처럼 어딘가가 문제일때는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 빠른 해결 방법이다.
2. 문제가 복잡할 때는 싹 밀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집도 오래되면 수리하는 것보다 부시고 새로 짓는 것이 낫고, 프로그램도 너무 오래되고 복잡하면 고쳐쓰기 보다 새로 짜는게 빠르고 깔끔하다.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기에 복잡하다면 판을 새로 짜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3. 새로 시작하더라도 꼭 필요한 것은 백업한다. 그래야 기존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이점을 활용할 수 있다. 단 꼭 필요한 것만 백업해야 한다. 그래야 쓸데 없는 부담을 털 수 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앞으로의 행동에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
4. 기존의 능력과 스펙으로 안 될때는 새로운 능력을 추가해야 한다. 세상의 일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무거워지고 있다. 기존의 능력으로 일을 하는데 버벅거린다면 새로운 능력을 추가해야 한다. 물론 돈도 들고 노력도 들지만 그것을 추가해야 일이 쉬워진다.
5. 업그레이드에는 시간이 든다는 것을 기억한다. 컴퓨터 윈도우를 새로 설치하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여기에 인증서나 꼭 필요한 프로그램만 다시 설치하는데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다른 버전의 사람이 되는데도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나 걸릴지는 기대하는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준비하는게 당연하다.
6. 새로 일을 시작하면 가능하면 쓸데 없는 일은 건들지 않는다. 원래 목표와 관련된 일만 하려고 노력한다. 누누이 경험하지만 무턱대고 관심사를 다하려 하다보면 속도는 느려지고, 머리속은 복잡해지고 또 다른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인생을 살다보면 업그레이드 해야할 때가 온다. 보통 문제가 생기고 한계가 왔을 때다. 새로 시작하려면 갑갑하다. 돈도 들어가고 시간도 들어간다. 그래도 어쩌랴. 이때 포기하면 갖다 버리거나 싸게 파는수 밖에 없다.
잘만 업그레이드하면 새것 보다 훨씬 잘 쌩쌩 돌아간다. 확실히 속도 시원하고 마음도 편하다. 얼마나 좋은지는 해본 사람만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