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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믿는다.

[이형준의 모티브 56]

by 이형준


“전깃불이 나가버린 날, 촛불을 켜고 밥상 앞에 둘러앉았을 때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나 역시 세상에 쫓긴다는 핑계로 한동안 마주 보지 않았던 어머니의 얼굴. 나는 그 얼굴에 차곡차곡 접혀져 쌓여있는 어머니의 간단치 않았던 삶의 주름살을 촛불 앞에서 비로소 보고 있었다.”



풀종다리의 노래. 아주 오래전 대학 때쯤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속에 어머니를 기억하는 대목이다. 책 속에서 읽었던 내용들은 이제 다 사라졌고, 그때 그를 떠올리면 파란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여가면서도 하얗게 웃고 있는 젊은 청년 손석희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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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노조 파업으로 구속되고 풀려난 후에도 한동안 그의 얼굴을 방송에서 볼 수 없었다. 듣기로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한다고 했고, 돌아와서는 라디오를 진행하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끔 이른 아침 버스에서 그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돌아온 것은 세월호와 촛불 집회였다. 사실 그전에 방송국을 옮겨 뉴스 앵커로 다시 시작했지만 이때 큰 주목을 받았다. 다른 방송국에서 이야기 안 하는 사실. 당사자는 아니라고 부인을 하지만 밝혀지는 증거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다. 세상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고 그중에 나도 있었다.



이런 변화에 손석희 앵커의 역할은 컸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소식을 전하기보다는 중도를 지키려 애썼고, 단순히 뉴스를 전하는 전달자가 아니라 그 속에서도 상대방을 사람으로 대할 줄 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방송사의 리더로서 함께 일하는 기자들을 이끌어가며 믿을 수 있는 뉴스를 전했고 사람들은 거기에 신뢰를 보냈다.



며칠 전부터 검색어 제일 위에 손석희 앵커의 이름이 보인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이야 했던 것이 이제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다. 싸움은 항상 양측의 주장이 있다. 여러 가지 쟁점이 있다고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경찰의 조사 결과 밝혀질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결과가 나오기 전에 수많은 기자들이 송두리째 뒤집어엎어서 진실 말고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단한 이번 사실과 상관도 없는 주장들을 생산해 낼 것이다. 그동안 보아왔던 언론이라 부르는 미디어들은 그렇게 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때 나는 어떤 입장을 보이는 것이 좋을까?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싸움 구경하듯, 불구경 하듯 그렇게 지켜보면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아주 오랫동안 옆에서 함께했던 친구가 경찰에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신은 의견을 밝히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한다면? 자신은 진실을 위해서 중립을 지킨다고 한다면? 싸움의 대상보다 그 옆에 오랫동안 친구라고 불렀던 그가 더 싫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옛말에 친구는 좋을 때가 아니라 힘들 때 드러난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를 TV에서만 보아오고 아무 관계도 없지만 이 일에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일정 부분 그처럼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촛불 집회 이후에 유명하고 힘있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내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 어른이 이 사회를 지키고 성장시켜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 대표적인 사람으로 손석희 앵커, 이국종 교수를 꼽고 있고, 내 주변에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사는 어른들을 기준으로 살아 가려고 한다.



그가 마흔에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늘그막에 젊은 20대 젊은이들과 경쟁하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한국에 남아있는 자기 또래의 지인들을 생각하며 후회를 했다고 했다. 점심에는 식은 도시락을 까먹으며, 저녁에는 근처에서 햄버거를 사다 먹으며 밤늦게까지 공부해서 졸업을 했다고 했다. 그것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달랑 종잇조각 한 장으로 남은 학위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매달리고 원하는 결과가 안 나왔을 때 찔끔 거리며 눈물을 보였던 자신의 처절함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노력을 믿어주고 싶다. 오랜 시간 행동으로 보여준 그의 시간을 믿어주고 싶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가 힘들어할 때 '나는 당신을 믿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혹여 원치 않는 결과로 배신이라는 감정을 당할지라도 지금은 이렇게 믿어주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행동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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