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준의 모티브 101]
너무 아팠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랫니 중간부터 오른쪽 어금니까지 고통이 전해왔다. 치과에 가니 어금니 쪽 디스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일주일 정도 약을 먹어보며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하루에 세 번 먹는 약, 고통은 점점 심해져 중간에 다른 진통제를 추가로 먹기 시작했다. 성탄절 밤이었다. 누워도 일어나 앉아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끙끙대고 있자 옆에서 자던 아들이 ‘아빠 괜찮아요?” 하고 물어본다.
다음날은 사실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다. 이 상태로 며칠을 더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 고통도 덜어낼 겸, 여행을 가도 되는지 확인할 겸 아침 문 열자마자 치과로 들어갔다. 어금니 쪽 고통이 더 심해졌다고 하니 사랑니가 신경을 눌러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일단은 신경치료를 하기로 했다. 마취를 하고 치료를 받으니 고통이 사라졌다. 사랑니 발치는 이가 잇몸 속에 있고 신경 가까이 누워있어서 대학병원에서 해야 한다고 한다.
제주도를 가도 되는지 물으니 그건 본인 판단이라고 한다. 만나기로 한 친구도 있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여행이라 미루기가 그랬다. 마취 때문인지 고통이 사라져서 가고 싶었다. 지어줄 수 있는 약 중 가장 센 약을 처방받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차피 주말이라 대학병원을 갈 수 없으니 다녀오자는 마음이었다.
치료를 받고, 약을 사고, 공항으로 가니 바로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다. 점심도 못 먹고 바로 비행기에 탔다. 여행을 간다는 설렘도 잠시 비행기 이륙과 함께 마취가 풀리는 게 느껴졌다.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물을 달라고 승무원에게 사인을 보냈지만, 이륙 중이라 잠시 후에 주겠다고 한다. 참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아픔은 너무 빨리 올라온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도 없이 약을 삼켰다. 나중에 물을 받아 다시 마시기는 했지만 약은 바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약효가 몸에 스며드는 동안 나는 내 손을 꾹꾹 누르며 다른 곳에 신경이 쓰이길 바랬다. 나중에 내릴 때쯤 잘못하다가는 내 손가락을 부러뜨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 내리는 제주는 우울했다. 두꺼운 구름이 내려앉고 세찬 겨울바람이 부는 거리를 뚫고 숙소를 찾아갔다. 그나마 친구가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하루 종일 지친 나는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피곤에 지쳐 누웠지만 잠을 길게 잘 수 없었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니 어금니 아래쪽이 퉁퉁 부어있다. 조금 심해 보여 사진을 찍어 동생이기도 한 치과의사에게 사진을 보냈다.
반응은 병원을 가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얼굴은 뇌와 가까운 곳인데 염증이 있으면 위험하니 토요일이지만 병원에 가는 게 낫겠다고 한다. 바로 제주대학교 응급실로 향했다. 환자로 가득한 응급실에서 고통을 참으며 기다렸다. 의사분은 보시더니 제주에서 수술을 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주사와 센 약을 줄 테니 버텨보라고 한다.
확실히 주사를 맞고 나니 살만하다. 괜찮아진 내 상태를 확인한 친구가 자신의 차로 제주의 명소를 데려가 주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갔지만 마음껏 먹을 수 없다. 맛나다는 고등어 회도, 쫀득한 제주도 돼지고기도 꼭꼭 씹을 수 없으니 즐길 수가 없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떨며 회포를 나눠야 하는데 술 한잔할 수가 없다.
월요일이 되어 서울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다. 간호사에게 들으니 당일 진단을 받아도 수술하는 날까지는 한 달 정도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고통을 가지고 그 오랜 시간을 버틸 수는 없다. 문진표에 의사분이 내 고통을 느낄 수 있게 오늘까지의 상황을 깨알같이 적었다. 진료 후에 수술 일정은 최대한 빠른 2주 후로 잡혔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 왔는데, 안도감은 들었지만 고통은 많이 줄지 않았다. 다음날 의사에게 제주에서 먹은 약은 잘 들었는데 새로 받은 약은 효과가 없다고 하자, 먹었던 약이 마약이라 좋을 것은 없으니 정 못 버틸 때만 먹으라고 몇 알 처방해 주었다. 약국에서도 그 약을 받을 때는 사인을 따로 해야 했다. 왜 사람이 마약에 중독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2주를 버텼다. 사랑니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이다. 수술 전날 입원해서 단식을 하고 다음날 수술을 받았다. 아내는 아이를 맡겨놓고 옆에 와서 기다린다. 별것 아닌 수술이지만 전신마취를 한다니 긴장한다. 누워서 바라본 마취실 천장에는 성경 문장이 적혀있다. 그 문구를 마음속으로 외우며 마취에 빠져들었다.
수술의 기억은 없다. 깨어남과 동시에 고통이 찾아왔다. 분명히 진통제를 놓아줬다고 했는데 고통의 크기는 저절로 눈물이 흐를 정도였다. 진통제를 추가로 놓아주는 간호사는 아마도 그전에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어서 효과가 덜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수술은 끝났다.
그리고 얼음주머니와 한동안 함께 했다. 너무 많이 쓰면 회복이 늦는다고는 했지만, 아픈 것보다는 얼얼한 것이 나았다. 그렇게 또 일주일. 병원을 다시 찾아 실밥을 뽑으며 공식적인 사랑니 발치는 끝이 났다.
크게 보면 일단락 되었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아파 죽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예민한데 뭐가 문제냐고 묻는 것 자체가 짜증 난다. 답할 기력도 없다. 그럴 때는 먹을 수 있는 것 챙겨주면서 토닥토닥 달래주어야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 묻는 것도 비용은 얼마며 어떻게 처리할지 묻는 것도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사람이 아플 때는 먼저 챙겨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요즘 코로나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 나는 이유다. 아픈 사람이 있을 때는 치료가 먼저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환자분들, 빨리 낫기를 바랍니다.
먼저는 못 먹으니까 더 먹고 싶어진다. 한 달을 죽하고 두유만 먹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보낼 때 먹방을 많이 봤다. 먹고 싶은 것 찾아보다가 캠핑 동영상으로 넘어갔다. 캠핑도 반은 먹방이다. 다 나으면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에 장비를 찾아보다가 전자 제품에서 문구 동영상까지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성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본능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또한 아플 때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가장 고마운 사람이다. 누가 진짜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 사람에게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이 진짜다. 지금 현장에서 애쓰는 의사, 간호사, 공무원, 그외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수술을 받은 지 두 달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아랫니를 혀로 눌러보면 느낌은 어색하고, 잇몸과 입술사이의 근육은 무엇이 들어있는듯 불편하다. 이 불편함이 사라지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품어오던 사랑니를 빼냈는데 바로 적응이 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내 몸이 바뀌었으니 그에 맞게 살아가는 게 맞다. 적응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세상도 정신없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 문제가 현실적으로는 경제 문제로 와닿는다. 하지만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될지, 이 파장이 어떤 문제를 만들어낼지, 그것이 어떻게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것은 앞으로도 이런 변화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교육쪽에서도 온라인을 이용한 비접촉 방식에 대한 문의와 요청이 늘고 있다.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면 나만 힘들어진다.
운 좋게 그동안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두 달여의 시간 동안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큰 수술을 받으셨던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아이를 낳을 때 아내는 얼마나 아팠을까. 이 몇개 뽑는 것도 이런데 더 큰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그들의 아픔이 그려지고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5킬로그램이 빠졌다. 물론 많이 돌아왔지만 아내는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고 이 상태를 유지하라고 한다. 안 좋은 시간 속에서도 잘 살펴보면 좋은 것이 함께 있다. 그런 좋은 점을 잘 찾는 사람이 행복하다. 그래서 인생은 보물 찾기 같다.
이번 고통을 한 번 더 겪으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고통의 원인이 있는데 이것을 제대로 뽑아내지 않으면 또 아프게 된다. 대충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이 된다.
요즘 우리나라도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가 신천지의 문제를 드러냈고, 이는 정치와 언론의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대충 문제를 해결하면 계속적으로 아픔을 겪어야 한다. 지금은 위중한 시기니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는 게 먼저지만, 해결책을 찾을 때는 하나씩 하나씩 원인까지 뿌리째 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그것으로 고통받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작년 연말부터 사랑니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또한 사랑니 때문이라는 변명을 하면서 나의 생활이 많이 무너졌다. 좋은 핑곗거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시 일어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바닥을 쳤다는 것이 느껴져서 인가보다.
결국 나아지려고 하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더라도 혼자서라도 할 것을 찾아서 해야 한다.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행동만이 결과를 만든다.
새 이가 나오려 할때도 고통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잡고 좋아진다.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뚫고 해결하려는 행동이 있으면 좋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좋아진다. 그게 세상의 순리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이형준의 모티브 101] 사랑니 발치 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