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가 괜히 있는게 아니야

[이형준의 모티브 80]

by 이형준


이제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된 형, 동생이 모였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사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출장 갔던 이야기,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제는 어떤지, 아들, 딸들은 얼마나 컸는지, 각자 가지고 있는 기억을 업데이트하며 최신의 상황으로 이해 수준을 맞춘다. 이야기는 흘러 흘러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안부를 확인하게 된다.




이십 대에 만나 삼십 년이 흘렀으니 함께 기억하고, 놀고 살아온 시간이 그전의 시간보다 훨씬 길다. 지내온 시간만큼 부모님은 연로해지셨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짱짱하고, 힘 많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머리 하얗고, 피부도 탄력이 떨어지고 주름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다. 문득 바라본 모습에 어깨를 구부리고 잘 펴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고, 오랫동안 써 왔던 장기가 하나, 둘씩 고장 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시작된다.




스크린샷 2019-07-13 오전 8.32.19.png © Economiology



그동안 우리를 반백살이라고 놀리던 막내도 아버님 눈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고 걱정이다. 눈에 문제가 생겨서 친한 친척을 통해 병원을 알아보고 치료받고 있다고. 그렇게 든든하던 아버님이 이제는 운전도 못하실 나이가 되셨다고. 본인이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 옆에 탔는데 신호등에 반응하는 속도도 확연히 느리고, 운전도 부드럽지 않아 아버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안전을 생각해서 운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부모님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본인의 경험을 쏟아낸다. 이제는 노쇠하셔서 골다공증으로 척추 재건술을 받은 이야기, 암으로 의심되어 병원에서 조직 검사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이야기, 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셔서 오늘 내일 하던 이야기 등등 알던 것도 있고, 처음 듣는 이야기도 있지만 다 듣다 보니 모두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나이에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들을 키우고, 본인도 성장해 가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평균적인 삶을 살게 된다. 누군가가 결혼하면 결혼식이 쭉 이어지고, 돌잔치를 하면 쭉 돌잔치를 하고,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상도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가 크게는 십 년 단위로 기억된다. 스무 살 때 성인이 되고, 서른 살 즈음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마흔이 되면 아이가 학생이 되고, 쉰이 되면 회사를 나오거나 부모님이 편찮으신 나이가 된다. 이런 전환기에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아홉수란 단어가 생긴 것 같다.




아홉수를 잘 견디고 넘어온 방법에도 공통점이 있고, 기억할 만한 부분도 있다.




첫 번째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과제로 만드는 것이다.


부모님이 편찮으신 것은 엄청난 충격이다. 가족이 아프고, 그 문제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경우에는 도대체 감당이 안 된다. 머리는 하애지고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무기력해져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막막해진다. 문제가 너무 크면 그것을 대처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때는 문제를 잘라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로 만들어야 한다.




부모님의 생사가 달린 문제지만 자신이 치료하고 낫게 할 수는 없다. 치료의 부분은 의사에게 맡기고, 최종 결과는 신에게 맡기고, 자신은 간호와 금전적인 부분을 맡는 것이다. 이 역시 모든 부분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그 선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리가 되는 순간 일은 감당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변화하게 된다.




문제를 여러 번 겪다 보면 이슈와 자신을 분리할 줄 알게 된다. 충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 기제가 발동했을 것이라 보이는데 마치 상처가 나고 아물면 딱지가 생기는 것처럼, 어려움을 여러 변 겪다 보면 마음에도 단단한 딱지가 앉아서 고통에 조금 둔감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큰 문제가 생겨도 큰 충격 없이 헤쳐나가는 분들은 이렇게 사건을 과제로 전환할 줄 아는 분들이다.



© gettyimages




두 번째는 좋은 쪽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의 일이란 것이 다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을 같이 가지고 있다.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부모님이 아프시면, 가족들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 직장을 잃는다는 것이 월급쟁이에서 사업가를 만들어 주는 모멘텀이 되기도 한다. 안 좋은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분명히 좋고, 안 좋은 것은 공존하는데 잘 넘어온 사람들은 좋은 쪽을 먼저 본 이들이다. 안 좋은 것에 먼저 매달리다 보면 감정 소모도 심하고, 갈등도 일으키게 된다. 처음에 생긴 문제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는데 이것에 빠져서 헤매는 과정에서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문제는 정신없이 꼬이게 되고, 나중에는 문제 풀기를 포기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반대로 좋은 쪽을 먼저 보는 사람들은 문제 해결모드로 쉽게 넘어간다. 어려움을 어떤 기회로 만들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어려움이나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편찮으신 것을 가족 단합의 계기로 만들고,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도약의 계기로 생각하는 사람은 위기를 훨씬 잘 극복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람보다 긍정적인 사람들을 좋아한다.



© Phillip Salzgeber





세 번째는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쌓아오고, 가지고 있던 자원이 한순간에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 편찮으시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시간, 돈, 마음의 에너지 등 신경 쓸 일은 많은 데 기존의 자원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다 해결을 하려고 하니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이때 하던 것 다하면서, 챙길 것 다 챙기면서 새로운 일을 해결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이때는 상황을 탈탈 털어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세워야 한다. 일이 먼저 인지 가족이 먼저 인지. 가족 중에서도 누구부터 챙겨야 하는지, 그 밖에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 우선순위를 생각해보고 포기할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끝도 없는 일과 사람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과 자원을 골고루 나누려 하다 보면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다.




필요하다면 양해를 구하고, 그럴 상황조차 안된다면 정말 소중한 것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마음과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소중한 것부터 분명하게 할 수 있고, 이런 기반을 잘 만들어야 그 위에 다른 사람과 일들을 쌓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어려움을 잘 겪고 나면 자신에게 누구와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분명해진다.



© gettyimages




지금 아홉수에 빠져 힘든 분들을 위해 위로의 말씀을 드리자면 그래도 지나간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 더 흔들리고, 부족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다들 넘어가니 너무 큰 걱정을 하지는 마시라. 두 번째 드린 말씀처럼 좋은 쪽부터 보시길.




어젯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연락할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든든한 형, 동생이 있으면 조금 더 위안이 될 것이다. '둘이 합치면 백 살이 넘네’라고 놀리던 막내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의 핸드폰 못 봤냐고... 괜히 아홉수가 있는 게 아니다.






[이형준의 모티브 80] 아홉수가 괜히 있는게 아니야

직장인의 성공을 위한 팟케스트 <3040 직딩톡>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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