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준의 모티브 83]
나는 싸움을 잘 못한다. 겁도 많다. 이런 나를 가장 많이 놀린 건 아내였다. 결혼하고 몇 년 지난 겨울, 아내와 밤길을 산책할 때 검은 물체가 확 다가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검은 고양이인 줄 알았던 물체는 강한 바람에 날린 검은 비닐봉투였다. 그때부터 아내는 내가 겁이 많다고, 눈이 커서 그런 거냐며 놀린다.
아들이 나를 닮았나 보다. 얼마 전 친구와 놀다가 한 대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개하며 아내가 전해준 이야기는 이렇다. 같이 놀다가 게임에서 진 아이가 걸어가는 우리 아이의 허벅지를 뒤에서 걷어찼다고 한다. 너는 그때 어떻게 했냐고 묻자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마치 바퀴벌레를 본 것과 같았어요. 내가 벌레를 밟거나 눌러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순간 너무 깜짝 놀라 몸이 굳었어요. 이거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대응하려고 할 때는 이미 바퀴가 사라진 것처럼 그 애도 사라지고 없었어요”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을 했다. 남자아이인데 싸움의 기술을 가르쳐줘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싸워야 한다고 가르쳐주어야 하는가? 그렇게 해서 떠올릴게 중학교 때의 기억이다.
학교 때 거의 싸운 적이 없다. 보통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고, 누구와 시비를 거는 스타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초반 나는 4번째 줄에 앉았다. 점심 도시락을 먹을 때 3번째 줄에 있는 친구 둘이 몸을 돌려 내 짝과 넷이 도시락 반찬을 나눠먹었다. 이렇게 넷이 친했는데 특히 내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순진하고 착했다.
이 친구와 일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고 괴롭히는 애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별명은 도룡뇽이었다. 자꾸 와서 시비를 건다거나 지나가면서 내 앞의 친구를 툭툭 건드리면서 갔다. 그때마다 못내 불편하고 못마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도시락을 같이 먹고 있는 데 도룡뇽이 큰 포크를 가지고 와서 내 도시락 반찬을 확 찍어갔고, 거기에 순간 욱해서 치고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정지된 사진처럼 떠오른다. 주먹이 오가다 힘으로 몸싸움을 하고, 책상이 밀리면서 넘어졌는데 내가 그 도룡뇽을 올라탔었다. 그러면서 주먹질을 하는데 끝도 없이 했었던 것 같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고 정신없이 싸웠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싸우면 큰 구경이 벌어진다. 아이들이 주변에 몰려 들었고, 복도를 지나가시던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면서 싸움은 끝이 났다. 그리고는 교무실로 끌려가 선생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혼나던 장면, 다시 우리 담임 선생님에게 인계되어 또 혼났던 기억이 난다. 일은 점점 커져 집에도 연락이 갔고, 다음날에도 혼났다.
맨날 싸우지만 안 걸리는 애도 있었는데, 나는 한번 싸움한 것이 너무 일이 커져 버렸다. 잘 싸우는 친구들이 원래 못 싸우는 애들이 일을 크게 만든다며 놀리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이 한 번씩 학교에 불려오시고 나서야 일은 마무리되었다. 그 후에 도룡뇽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내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그때 배운 게 있다면 가능하면 싸우지 않는 게 좋지만, 싸울려면 제대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육체적으로 싸울 일은 별로 없지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조직 간의 경쟁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전략을 세우고 기획을 하는 것은 다 싸우는 일이고, 여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싸움의 기술을 잘 활용해야 한다.
싸움의 첫 번째 기술은 <선제공격>이다.
보통 학생 때는 선빵이라고 불렀다. 싸움에서는 선빵을 날리는 놈이 유리하다. 이유는 선제공격을 하는 사람이 싸움의 타이밍과 장소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때에 유리한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타이밍에 공격을 가하게 되면 상대는 당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싸워야 한다면 먼저 공격해야 한다. 반대로 내가 공격을 당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은 방어를 해야 한다. 잘못 맞으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급소를 막아야 한다.
두 번째, 방어의 가장 좋은 방법은 <신속한 대응>이다.
정신없이 맞기만 하면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고 당황해서 가만히 있으면 또 때릴 수 있다. 바로 맞대응을 해야 자신에게 가해지는 공격의 강도를 줄일 수 있다. 나에게 잘해주는 이에게는 나도 잘해주고, 자신에게 막하는 이에게는 그에 상응한 힘과 강도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나에게 공격하는 이에게 잘 지내자고 말하는 것은 다시 공격해도 된다는 시그널을 주거나 주변 이들에게 '나는 호구요'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
세 번째, <때릴 때는 급소>를 노려야 한다.
싸움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인간의 몸이라는 것이 싸움이 벌어지면 몸이 굳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흥분해서 있는 힘을 순식간에 가져다 쓰게 된다. 불과 몇 분만 지나면 몸에 있는 에너지는 동이 나고 만다. 그래서 힘을 쓸 때는 상대의 약점을 노려야 한다. 나의 있는 힘을 상대방의 약점에 모아 공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힘만 쓰고 제풀에 지쳐 자빠지게 되어있다. 조직에서도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쓸 수 있는 사람, 시간, 돈 등 있는 자원은 모두 경쟁자의 약점에 집중해야 한다.
넷째, <힘이 빠질 때는 친한 친구 쪽으로> 빠져야 한다.
보통 싸움이 생기면 흥분해서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같이 싸움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싸우다가 실수로 다른 편을 건드리게 되면 싸움은 더 커지고, 보통 힘 빠진 상태에서의 싸움은 쉽게 당하기 쉽다. 싸우다 힘이 빠지면 자신의 친구 쪽으로 빠져야 한다. 그래야 아군이 덤벼드는 상대방을 막아줄 수도 있고, 힘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수도 있다. 그래서 싸우기 전에는 친한 친구와의 관계를 좋게 해야 하고, 어려울 시에는 도와 달라고 이야기도 해 놓아야 한다.
다섯 번째, 싸움이 커질 때는 <누가 잘못했는지를 분명히 알려야> 한다.
싸움이 커지면 교무실로 가거나 경찰서 또는 재판으로 넘겨질 수 있다. 싸움이 힘의 응전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소재가 가려지고 이에 따라 벌을 받게 된다. 이때 누가 잘못 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 싸우다 보면 정신없고 주변 사람들은 친한 사람 편을 들어주게 되어있다. 이때 필요한 증거들을 잘 챙겨야 나중에 억울하게 당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싸움을 잘 하기 위해서는 평소 체력이 단련되어 있어야 한다. 기술도 필요하다. 잠깐 싸우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긴 싸움에는 체력과 기술이 뛰어난 이가 이기게 되어있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긴 싸움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깡이다. "너 날 건드리면 가만 안 둬” 하는 분노. 그것이 있어야 내 안에 담겨 있는 힘을 꺼내 쓸 수 있다.
어제 일본 아베 정권이 싸움을 걸어왔다. 여기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냉정한 대응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분노다. 겁이나고 무서워도 "너 내 새끼 건드렸으니 가만 안 둬. 너 이제 피똥 싸게 만들어주마" 하며 뛰어나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두 번 다시 안 건드린다. 그래야 내 새끼들도 똑같은 수모를 안겪으며 살 수 있다.
[이형준의 모티브 83] 싸울거면 분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