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준의 모티브 92]
조커가 나쁜 놈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는 절대 악이었다. 나의 이런 단순한 생각이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흔들렸다. 그 악마 같은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서서히 이해가 갔다.
이 글은 영화 ‘조커'를 보고 쓰는 글이다. (스포입니다.) 조커가 되는 아서는 웃음을 자기 맘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나눠주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되라고 그의 어머니는 그를 해피라고 불렀다.
그가 사는 고담 시는 청소 노동자의 파업으로 쓰레기가 쌓여 골치를 앓는다. 쥐들과 전염병, 악취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는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코미디 클럽에 설 날을 준비하면서 광대 분장을 하고 길거리에서 손님을 모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망해가는 가게의 폐업 정리를 위해 간판을 돌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려 한다. 우스꽝스러운 머리, 마르고 꾸부정한 몸, 앞이 커다란 신발을 신은 그를 동네 아이들도 우습게 보았나 보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아서의 광고판을 잡아채서 뛰기 시작하고, 아서는 그것을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간다. 밥줄인 직업을 잃지 않기 위해 그 광대 분장의 커다란 신발을 신고서도, 미끄러지면서도 그들을 뒤쫓아 간다. 거의 다 잡았을 것 같은 뒷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아서는 빼앗긴 광고판이 뽀개질 정도로 얻어맞아 넘어지고, 도망치던 아이들은 그를 둘러싸고 집단 구타를 한다.
일자리를 준 사무실에는 아서가 길거리에서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옷을 갈아입는 메마르고 초라한 몸둥아리에는 커다란 멍이 들어있다. 직장 동료는 총을 가져다주며 쓰라고 한다. 정신상담을 받고 있기에 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는 반문에도 그는 총을 준다. 사실은 총을 판 것이다.
사장의 호출에 아서는 불려간다. 폐업 정리를 하던 가게에서 일하다 말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물어본다. 아서는 자신이 못된 놈들 때문에 두들겨 맞은 것을 동료들에게 듣지 못했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사장은 그가 두들겨맞아 깨져버린 광고판을 돌려주라고 한다. 광고판을 돌려줄 수 없다면 그에게 지불해야 하는 일당에서 까겠다고 말한다.
집에 돌아가면 홀로 거동조차 힘든 어머니가 계신다. 그런 어머니를 아서는 극진히 모신다. 편지에 집착하는 어머니를 위해 확인할 필요조차 없어 보이는 편지함을 확인하고, 비루한 살림에도 어머니 음식만큼은 챙겨서 침대 위에 올려드린다.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어머니 페니를 위해서는 직접 손으로 잘라 입에 넣어드릴 정도로 살갑고, 함께 머레이 토크쇼를 보며 삶의 고단함을 잊는다.
그는 웃음을 자기 맘대로 조절할 수가 없다. 뇌에서 그것을 관할하는 부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은 오해를 만든다. 버스 안에서 아이가 쳐다볼 때 얼굴 표정으로 아이를 즐겁게 해주던 그가, 아이 엄마의 냉정한 반응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미친놈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지만 그는 자신의 병명과 이유를 담긴 카드를 보여주며 이해를 얻는다.
하지만 억울하게 회사에서 잘린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는 달랐다. 늦은 밤 허름한 지하철 안, 양복 입은 술 취한 세 명의 남자는 조용히 앉아서 책을 보던 한 여성을 희롱한다. 들고 있던 감자튀김 조각을 던지며 그녀를 못살게 구는 순간 아서의 웃음이 터진다. 순간 분위기는 바뀐다. 여성은 그 순간 다른 칸으로 자리를 피하지만 아서는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팔로 입과 목을 막으며 멈추려고 하지만 얼굴만 달아오를 뿐 멈춰지지 않는다.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한 세 남자가 아서에게 다가온다. 자신이 병이 있음을 말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는다. 그리고는 아서의 얼굴을 강타한다. 출렁거리는 지하철 바닥에 쓰러진 아서를 그들은 집단 구타한다. 터널을 들어가며 어두워진 순간 구겨진 종이봉투 안에 들어있던 총을 꺼낸 아서는 그를 구타하던 놈들에게 총을 쏜다. 지하철 안에서 두 명, 그리고 다음 지하철역에서 한발을 맞고 도망가던 또 한 명.
사람을 죽이고 나서 두려움에 아서는 미친 듯이 도망친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노숙인들이 모여있는 어두운 다리 밑을 달려나간다. 정신없이 달려 들어간 곳은 공중 화장실. 불이 반쯤 꺼지고 껌벅거리는 어두운 그곳에서 문을 닫고 헉헉거리다 귓속에서 들려오는 첼로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음악에 맞춰 천천히 춤을 춘다. 마치 사람을 죽이고 정신줄을 놓는 것처럼. 그런 그에게 조커의 모습이 보인다.
살인사건 이후 세상에서는 이 문제를 보도한다. 거대한 쥐새끼 같은 놈이 멀쩡한 건실한 사람을 죽였다, 광대의 가면을 쓴 비열한 인간이 살인을 저질렀다며, 이를 위해서는 거대한 고양이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테일러 웨인이 등장한다. 그는 돈 많고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차별적인 뉴스 보도는 사람들을 자극하고, 많은 사람들이 광대를 자처한다.
이후 아서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자신의 우상과도 같았던 토크쇼의 주인공 머레이도 자신이 출연했던 코미디 클럽의 동영상을 가져다가 전국적인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엄마의 편지를 읽고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확인해 나간다. 그리고 병원을 찾아 어머니의 기록을 얻게 되고, 그 안에서 숨겨졌던 비밀을 알게 된다. 자신이 왜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되었는지, 자신 몸에 왜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이 남았는지. 그리고는 그는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일을 한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놓아 버렸는지 그는 계단을 내려오며 미친 듯이 자유롭게 춤을 춘다. 그 순간 그는 조커가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고담시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 가진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 약한 사람을 무시하는 세상, 그 차별과 분노가 쌓여 들끓어 오르는 세상. 영화 속에서 시대적 공간은 모던 타임스가 상영되는 과거지만, 그 속에서 오늘의 우리가 보였다.
악한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졌다. 아서 같은 불쌍하고 연약한 인간이 조커 같은 악당으로 변해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학대, 직장에서의 차별, 사회에서의 괴롭힘과 무관심. 그런 것이 쌓여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어 정신 줄 놓게 만들었을 때 한 인간을 괴물로 만들었다. 어느 한 공간에서라도 괴롭힘이 덜했다면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악당이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하지만 악당이 만들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가 집안에서 어떻게 했느냐, 우리가 가족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직장에서 다른 이를 어떻게 대했느냐, 사회에서 약자와 빈자에 대해 어떻게 대했는지가 미치광이, 악인을 만드는 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약자와 빈자만 악당이 된다고 오해는 마시라. 부자와 강자도 악당이 된다. 그들에게도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절대적인 적인 아니라 상대적인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함께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사람들과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았을 때 우리가, 조커같은 세상, 조커같은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형준의 모티브 92] 누가 조커같은 인물을 만들었는가?
유튜브: (직장인의 행복한 성공을 위한) 8 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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