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준의 모티브 89]
강의의 즐거움 중 하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강의실에 가장 먼저 온 사람과는 인사를 하면서 한두 마디 나누게 된다. 그날은 비 오는 날이라 전체적으로 어둡고 조금은 눅눅한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하지만, 첫인사가 참 밝고 탄탄했다. 웃음이 차있는 ‘안녕하세요?’라는 말 한마디가 참 건강하고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준다.
앉은 자리가 강의 테이블 앞이라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같은 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들렸다. 점심 먹고 나누는 이야기가 '어떻게 하면 기부를 잘할 것인가'였다. 평소에 잘 들을 수 없는 주제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관심을 갖고 들었다. 요는 기부단체를 통해서 기부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기관의 운영비를 떼고 돈이 수혜자에게 돌아가니 자신은 직접 기부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기부를 하려고 하니 가장 불쌍한 아이들이 '나이가 차서 독립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보육원에서 먹여주고 재워주지만 만 18세가 되면 독립해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에게 용돈을 받고 살아온 아이들도 아니어서 자립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 아이들을 위해 씨앗통장에 매월 얼마씩 돈을 후원해주고 있다고 한다.
특히 기억에 났던 것은 그 통장은 후원자가 돈을 넣는 만큼, 정부가 매칭 펀드로 같은 돈을 넣어준다고 한다. 같은 돈으로 2배를 후원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보내주면 연말정산에서 공제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부부가 같이 한 명씩 후원을 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그렇게 단단해 보일 수가 없다. 저런 사람이 있기에 세상이 어지러워도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하는 친한 동생이 있다. J는 청년 때부터 영아원 봉사를 해왔다. 얼마 전 토요일 오전에 하는 모임에 초대를 하니 시각장애우를 위한 녹음 봉사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평소에 맛있는 것 좋아하고, 이쁜 곳 가는 곳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반전 매력이라고 할까?
그녀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는 많다. 재미있고, 말도 잘하고, 능력도 출중하고 등등 이유가 있겠지만 생각해보니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나눠준다. 생일이면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가져오기도 하고, 외국으로 외화벌이(그녀의 표현이다)를 다녀오면 주변 사람들의 선물을 바리바리 챙겨온다. 맛있는 것을 먹게 되면 공공연히 알려 부러움을 자아내게 하고, 먹고 싶다고 하면 그곳까지는 데려가 준다. (계산은 선배가 해야 한다.)
어릴 때는 선물을 받는 게 좋았는데, 나이가 드니 나눠주는 게 좋다. 내가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능력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를 아끼는지를 무언가를 사줄 때 '아까운가, 아깝지 않은 가'로 판단한다. 아내와 결혼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도, 연애할 때 아무리 비싼 것을 사줘도 아깝지가 않았다. 더 좋은 것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아.. 이 여자와 결혼할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본 사람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것이다.
아마도 봉사를 많이 하고, 나눔을 많이 실천하는 사람은 이런 기분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나누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직장인들이 지혜롭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먼저는 무엇을 나눌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나눌 수 있는 것은 크게 물질과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마음을 넣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써가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주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 돈을 자신의 마음을 대신해서 나누게 되는 것 같다. 둘 중에 자신이 나누고 싶은 것을 선택하면 된다.
그 다음은 누구에게 나눌 것인가? 누군가는 해외에 굶어 죽어가는 어린아이에게 마음이 가고, 누구는 우리나라에도 힘든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누구는 늙어가는 어르신에게 마음이 쓰이고, 누구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에게 마음이 간다. 결국 자신이 가장 마음이 가고 신경 쓰이는 사람을 도와주면 된다. 나는 누구에게 마음이 가는가? 누구에게 무엇을 나눌 것인지만 결정해도 큰 결정은 된 것이다.
시간이 안된다면 할 수 없지만, 자신이 움직여서 누군가와 함께 나눈다면 그 안에서도 기쁨이 있다. 나도 아버지학교에서 요청을 받으면 빼지 않고 나가서 봉사를 하려고 한다. 이유는 받은 게 많아서다. 그 안에서 위안도 얻고, 배우기도 하고, 함께 하면서 성장하기도 하다. 하다못해 그 안에서 밥을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다 애정하는 마음이 담겨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토요일에 하는 모임도 내 마음속에는 나의 지식과 경험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목적이 직장인의 행복한 성공을 위해서 도움이 되자는 것이다. 가까운 지인들, 친구, 동생들과 함께 하는데 이 활동을 하면서 많이 배운다. 각 분야에 있는 나름 전문가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고, 특히 직장이나 집에서 나눌 수 없는 고민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힘을 얻는다. 요즘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솔솔치 않다.
추석이다. 예로부터 한 해 동안 노력해서 걷어들인 과실을 자신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상과 주변 사람들과 감사하며 나누는 날이다. 가족끼리 오랜만에 모이면 참 좋다. 돈을 드려도 다른 봉투로 돌아오고, 선물을 드려도 다른 선물로 돌아 온다. 이런게 나누는 기쁨이 아닐까? 어렸을 때 성당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말할 때는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요즘에는 이런 나눔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있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없어도 나누기에 풍성하다. 작지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다. 그래서 풍성해지는 것이다. 하늘만 봐도 나누기 참 좋은 날이다.
*디딤씨앗통장: https://www.adongcda.or.kr/
[이형준의 모티브 89] 나눠서 아깝지 않은 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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