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부에서 발목이 잡혔을 때

[이형준의 모티브 88]

by 이형준


Scene #1


고객으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이렇게 막 할 수 있냐'고, '처음이라 기대를 했느냐 이게 뭐냐고' 화를 낸다. 이 고객을 따오기 위해 생고생을 다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지인들을 총 가동하고, 내부에서 몇 달 동안 기획서 작업을 하고,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간신히 유치한 고객이다. 담당자가 처음에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방문과 마음을 다한 영업 활동으로 다행히 호감을 얻었다. 그는 동종업계 관계자 모임을 이끄는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화를 낸다. 작업하러 나간 진행팀이 고객과 싸운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비를 설치하는 인력이 관련 정보를 확인하면서 무뚝뚝하게, 예의 없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Scene #2


투심위에서 부결된 것도 아니라 일정을 못 맞춰서 무산되었다. 몇 달 동안의 작업이었다. 지인의 정보를 듣고 고객사를 컨택했다. 올해 매출의 성공 여부는 이 회사를 유치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고객사를 만나보니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내부적인 자금 여력의 한계가 있어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그동안 관련 업무를 몇 번이나 처리해본 경험상 진행 가능성은 높다. 회사의 투자심의위원회를 통해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모든 게 멈췄다. 담당팀이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이번 투심위에 안건을 못 올렸다는 것이다. 고객사의 업무 진행 일정상 이번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겨우 따온 일을 사업평가팀이 날려버렸다.



© Gettyimages




밖에서 고생해서 일을 수주해왔는데 내부의 프로세스나 지원 부족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원래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고 짜증 나는 법이다. 담당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이유가 있다. 고객이 먼저 문제를 만들었다는 둥, 자신도 일이 많아 미치겠다는 둥. 물론 어느 정도는 이해는 간다. 하지만 상황을 보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말들이다. 이렇게 내부 인력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일단은 문제가 당장 해결해야 할 때는 그 문제를 해결해줄 적임자를 찾자. 능력이 안되는 사람에게 빨리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닭에게 날아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날 수 없는 조류가 있듯 해당 팀에 있어도 능력이 없는 직원이 있다. 이럴 때는 빨리 지원 가능한 인력을 수배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도록 하자. 보통 해당 팀의 능숙한 선임이라던가 팀장이라면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냥 한번 문제가 생겼거니 하고 넘기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문제가 생긴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다른 팀 직원이 자신에게 삐진 것은 아닌지, 열심히 일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와 문제가 있었다면 풀고 가야 한다. 그래야 일이 편해진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부 직원이 자신을 잘 도와줄 이유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보통 능력 있는 직원은 바쁘다. 밥을 사주던 술을 사주던 하면서 관계를 좋게 해야 하고, 그가 평가받는 기준을 알아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일에 발 벗고 나서주게 된다.




만약에 그가 말이 안 먹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인 이기주의로 편하게 일하려 하고, 일하면서 조금의 위험도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면 공식적인 방법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공식적인 회의, 분명한 업무요청, 확실한 일정 관리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 일을 하지 않을 때 책임은 일을 하지 않는 당신이 져야 한다고 분명하게 이메일로 적어서 알려주자. 이메일 참조에 높은 사람이 들어갈수록 긴장감은 높아진다. 보통 이런 직원들은 내부적으로 책임지는 것에 민감하다.



© Gettyimages




프로세스가 문제일 때도 있다. R&R이 불분명하거나 일부 직원과 팀에 일의 부하가 걸릴 때다. 보통 일 잘하는 직원에게 일이 몰려 그를 미치게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팀장, 리더가 나서야 한다. 담당 직원들끼리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팀장들이 나서서 일을 명확히 하고 정리해 주어야 한다. 어떤 순서로 일하고, 누가 책임지는지, 일을 줄 때는 어느 정도 시간을 생각하고 주어야 하는지 등등, 앞으로 일을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적인지 조율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두 팀 간의 정해진 내용을 공유할 때는 함께 일하는 팀끼리 모여서 회식이라도 한번 하면 분위기가 좋아진다. 물론 일처리도 부드러워지고 빨라진다. 친한 만큼 일하기도 좋은 법이다.




두 팀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문제가 될 때는 상위 상사 (보통은 임원)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팀장들은 자신의 팀원들에게 유리하게 일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이 잘 안 풀린다. 팀원들이 모두 일이 많다면 더욱 그렇다. 다들 과부하가 걸려있는 상태에서 억울하지 않으려면 일의 진행이라도 공정해야 한다. 업무가 가능한 효율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손봐야 한다. 이때는 부서 이기주의가 아니라 회사가 더 성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풀어가야 한다.



© azbigmedia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팀들이 있다면 조직문화가 좋은 회사다. 내부 문제가 한두 번 해결이 안 되면 구성원들은 냉소주의에 빠지기 쉽다. '해도 안돼', '괜히 움직여 봤자 우리만 손해야’, '그냥 있는 그대로, 하던 대로 해'하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진다. 물론 이런 조직도 바꿔낼 수는 있다. (수많은 소통, 소속감 갖기, 비전 설정과 공유, 미션과 가치, 행동강령, 성공사례 등등..) 그런데 조직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내부 문제를 놔두면 그냥 있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곰팡이처럼 점점 증식을 한다. 내부에서 발목이 잡혔을 때 그냥 쓰러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손목을 밟아주던, 끊어내라. 그렇지 않으면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처럼 계속해서 당신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 lifescienceleader




[이형준의 모티브 88] 내부에서 발목이 잡혔을 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길게 사는 인생, 두 번째 직업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