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형준 Oct 12. 2019

독한 사람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이형준의 모티브 93]


아끼는 동생이자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보고 싶다고 한다. 가능한 날짜 몇 개를 알려주니 가장 가까운 날을 잡는다. 그날이 며칠 전 한글날이다. 쉬는 날 점심은 여유로웠다. 집 근처 조용한 식당에서 만났다. 음식을 먹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하기로 한 조직에 들어갔는데 생각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그쪽 조직에서 기대하는 바와 자신이 하고자 했던 것이 맞지 않았다. 함께 하기로 하면서 배려해 주기로 한 것을 포기하기를 바라고, 무조건 자신의 뜻대로 해주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것은 모두 포기하고, 고용주를 위해 모든 것을 올인해주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분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분과 일하면서 다한증이 생겼고, 한 달 동안 5킬로그램이나 빠졌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예상이 간다.





© undark.org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사서 시민의 숲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걸어가는 중에 예전 생각이 났다. 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인의 회사 인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결과가 좋아서 결국 그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었다. 외부에서 인수를 도울 때는 그렇게 신사답게 대해줬던 회사의 넘버 2가 내가 그의 밑으로 들어가자 태도가 달라졌다.




의사결정에 있어 쉬운 것이 없었다.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했고, 현실적이지 않은 목표, 합의되지 않은 숫자를 주고서는 해올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결과를 맞추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질책했다. 사실 일은 더 하면 되는 것이었다. 힘든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그때는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담배연기가 천천히 피어 올라가는 동안 느껴지는 시니컬한 침묵,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빛이 싫었다.




인간적인 모멸감이라 할까, 무시당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전까지 좋은 선배들과 리더만 만나서 그랬는지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선배님께 토로하다 코칭을 소개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코칭은 사람을 도구로 보지 않고 그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좋았다. 인간을 문제 해결의 주체로 바라보는 철학이 좋아 공부를 더 깊게 하게 되었고 직업까지 바꾸게 되었다.




© kjyun.tistory






산책길을 걸어가다 나무숲 사이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도 좋았고, 조금은 축축한 나무 냄새도 좋았다. 이야기는 좀 더 깊어졌다. 그는 자신을 힘들게 한 그분 때문에 힘들었지만 나쁜 사람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는 독한 사람이지만 능력은 뛰어난 사람이라고 분리해서 보았다.




그분은 어릴 때 힘든 상황 속에서 독하게 살아왔고 지금의 것을 이룬 사람이다. 자신의 기업체도 가지고 있고, 아직도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술도 퇴근 후 전투적으로 1~2시간 마시고 들어가 자고,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고 일한다고 한다. 다만 사람을 자신의 돈을 벌어다 주는 도구로 보는 점, 너무나 말을 쉽게 하고, 조석으로 말이 바뀌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점이 힘들었다고 한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회사 생활이 힘드니 그냥 그를 나쁜 사람으로 여기고 그분의 능력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어떻게 하다가 지금까지 온 사람, 주변 사람을 쪼아서 여기까지 온 사람. 그렇게 하면 조직 안에 있을 때도 회사 밖을 나갈 때도 얻는 것이 없다. 그 시간이 고통스러운 시간, 힘들었던 시간으로만 기억된다는 것이다.




후배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힘든 것은 힘든 것이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 느긋하게 산 것은 아닌가, 너무 현실에 안분지족하고 산 것은 아닌가 반성했다고 한다. 마치 몽둥이로 세게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고 했다. 세상에 저렇게 독하게 사는 사람도 있는 데 자신만 너무 여유있게 산 것은 아닌가 하고.



© unycos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긴 목표는 생각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당장 이번 달부터 치열하게 살아볼 거라 한다. 계획을 꼼꼼히 세웠다. 앞으로는 '독하면서 제대로 하는 것'이 자신의 기준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조직에 들어갔던 시간이 고통과 손해로만 여겨질 것이 싫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도 지혜로운 관점이다.




보통은 문제나 어려움이 있으면 그 모든 기억을 한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해 버린다. 좋았어, 안 좋았어, 하면서. 하지만 이렇게 전체를 하나로 퉁쳐서 보면 배울 것은 없어진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다. 세상 모든 사건, 기억, 시간 속에는 양달과 응달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중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안에서 다음을 위한 해결책과 에너지원을 찾을 수 있다. 독한 것 안에서도 잘 구분해 보면 약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시민의 숲을 걸어 나오면서 나보다 나은 후배가 더 잘 되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앞으로 독하고 제대로 하는 모습 기대한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이형준의 모티브 93] 독한 사람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유튜브: (직장인의 행복한 성공을 위한) 8 STEP


https://www.youtube.com/channel/UCQCit5ufStvLsbj_91tmX9w?view_as=subscrib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